박보영 교육학박사, 박보영토론학교교장

대립 토론은 나에게 어떤 ‘공부’였나

고등학생인 나에게 사회가 재차 강조하고 요구하는 공교육시스템과 대학입시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맞지 않는 옷이기보다는 날 갈기 갈기 찢어놓았다. 날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가치가 낮은 사람임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였다. 몇 번이나 학교 자율학습시간에 교과서와 자습서를 찢게 만들었다.

수능모의고사 점수가 너무 낮아서 잠시 대치동에 학원을 다녔다. 왠지 영어로 대학가는 길이 조금 수월하다고 느껴져서 였다. 포항에서 강남은 참 멀었지만 그 먼 길이 자유롭고 짧게만 느껴졌다.

영어로 대학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대치에서 나고 자란 유학파들이었다. 그때 잠시 면접 훈련 도구로 만난 영어 대립 토론도 역시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한마디로 나의 것이 아니었다. 뻔한 보여주기식 영어 뽐내기 같았다.

결국에 영어로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교에 진학하고 여전히 교육시스템을 탓하고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나 자신이 미워질 그 즈음 영어대립토론을 조슈아 박 교수님을 통해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뭐랄까, 오기가 생겼다. 포기하지 않는 게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오기가 생겼을까. 아마 내 생각도 가치 있다고 세상에 소리 지르고 고함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내 이야기를 7분 정도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심판과 여타 디베이터들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쓸데없는 소리를 막 지껄였다. 이게 디베이터로서의 내 첫 시작이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일 년 쯤 기본기를 배우고 조그마한 국내 대립토론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모든 심판이 논거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하였고, 나는 이번엔 화나지 않았다. 이젠 조금 더 의미 있는 소리를 내고 싶었다.

이 때부터 나는 조금 더 많은 뉴스, 시사 잡지를 읽고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세상에 대해 공부했다. 그 다음해에는 조그만 상을 탔다(영어권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참가자중 연사 1위를 했다). 상에 잠깐기분 좋았고, 내 가치관은 통째로 뒤집혔다.

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마구 패면서 교육이라 했던 시절컸다. 이제는 안 그러더라(덜 그러는걸까). 당연하다는 듯이 맞고 자랐다. 아끼는 내 여동생은 더 힘들었다. 여자라서 뛰면 안 되었고 거칠게 놀면 혼났다.

대립 토론을 “공부”하기 전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나는 내 환경에 맞게 살았으니까. 이상하고 신기한 개념들도 배웠다. 양성평등, 체벌금지, 동물 학대금지 등 내가 살아온 많은 당연한 것들을 부정하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 경험은 여전히 나에게 많은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마음가짐을 주었다. 생각하는 힘을 주었다.

이제는 영어 대립 토론 6년차 인엄연한 디베이터다. 대치동학원에 출강하기도 하고 여타 연세대, 서울대 등등의 영어 대립 토론 동아리가 초대해서 강연도 한다. 여러 국제대회의 챔피언도 되었다.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건, 이제 여자를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쓸 데 없이 떠들고 욕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내가 자라난 환경이 하라는 대로 살지 않는다.

솔브릿지 국제경영 대학 정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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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달라졌나?
● 내 가치관은 통째로 뒤집혔다.
● 내가 살아온 많은 당연한 것들을 부정하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 나에게 많은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마음가짐을 주었다.
● 생각하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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