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킹스크리스찬 고등학교)

▲ 이하영(킹스크리스찬 고등학교)

아침 8시 30분 평소와 다르게 옷을 껴입고 예쁜 화장이 아닌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목에 스카프 대신 목도리를 두르고 머리에는 헬멧을 썼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이유는 이 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 자전거 투어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포기하고도 남았겠지만 2주 동안 동천에서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면서 쑥쑥 늘어난 실력을 믿고 자전거를 트럭에 실었다. 버스에 몸을 실으니 차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아이들이 전부 다 버스에서 기절한 듯이 잠들어서 버스 안이 너무 조용했다.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나는 눈도 못 감은 채 걱정만 하고 있었다. ‘혹시 오르막길에서 못 올라가면 어쩌지?’, ‘넘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 속에서 버스는 쌩쌩 달리며 섬진강 자전거길 시작 지점인 곳에 도착했다.

다시 한 번 헬멧을 고쳐 쓰고 트럭에서 내려오는 자전거를 받았다. 아이들 모두가 긴장한 탓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혹여나 다칠까봐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준비운동이 시작되자마자 버스 안에 있던 고요한 아이들은 사라지고 모두 다 수다쟁이가 되었다. 운동을 몸으로 하는 건지 입으로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준비운동이 끝나고 하나, 둘 자전거에 몸을 실고 앞에 있던 아이가 “출발!” 하고 외치자 ‘끙차!’하고 다리를 저어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긴 지렁이처럼 한 줄로 이어진 우리는 계속해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탄지 5분도 안 돼서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앞 사람들도 앓는 소리를 내며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다들 끙끙거리며 힘들어 하자 남자 아이들이 앞으로 와서 “힘내! 조금 있으면 쉰다!”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줬다. 남자 아이들이 앞으로 가서 쌩쌩 달릴 수도 있는데 뒤에서 여자 아이들을 챙겨주면서 속도 조절을 해 줘서 평소보다 더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 내리막길을 가느라 옆 풍경도 못보고 힘들게 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만 계속되는 곳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내 온몸을 감싸며 지나갔다. 숨을 크게 들어 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는데 목사님께서 “옆을 봐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제서야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깊은 강물인데도 바위들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한 물들이 바람을 따라 흐르고 우리 앞뒤에는 빨갛고 노란 잎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우와!”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자전거를 타느라 다리가 찌릿찌릿 거리며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그 고통이 바람을 타고 싹 날아가 버렸다.

“곧 있으면 도착이다!”하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더 페달을 세게 저으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화개장터였다.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두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먹거리 코너로 달려갔다. 양념치킨, 닭꼬치, 붕어빵, 핫도그, 오뎅 아직 점심식사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지갑에서 돈을 쑥쑥 꺼내며 계산해서 점심을 못 먹을 정도로 간식을 많이 먹었다. 선생님께서 좀 있다 점심을 남기면 혼난다는 말에 겨우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지갑 문을 꼭 닫았다.

화개장터에서 나와서 굴다리로 간 우리는 따뜻한 바닥과 식탁은 없었지만 흙을 탁탁 털고 땅바닥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치킨, 새우튀김, 불고기, 김치 다 좋아하는 음식만 나와서 그런지 아무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먹기만 했다. 선생님께서 음식이 남을까봐 걱정했지만 우리는 없어서 더 못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따뜻한 햇살 아래 앉아있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10분 후에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아!”하며 곡소리를 내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많아서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선생님 말씀대로 내리막길이 훨씬 많았다. 오는 길은 모두 다 곡소리를 내고 올라왔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전거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힘들어하며 올라왔던 코스들이 눈에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앞에 있는 팀이 더 속도를 내며 쌩쌩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보였다. 버스를 보자마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탔다는 성취감에 기뻐서 옆에 있는 친구와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출발할 때 보다 더 조용했다. 창밖을 보면서 오는데 가족끼리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아이들이 앞장서고 뒤에서 부모님이 지켜주며 자전거를 타는 가족을 보니 너무 부럽고 멀리 있는 우리가족이 생각났다. 이 멋진 풍경들은 나 혼자만 보고 즐겼다는 게 미안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이유는 뒤에서 나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섬진강 자전거 투어를 무사히 마쳤다고 말씀드린 후 다음에 우리가족도 꼭 자전거 투어를 해 보자고 했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투어를 하며 멋진 추억을 만든 것처럼 우리 가족과도 멋진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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