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志剌發光) 이야기

기기(欹器) 혹은 의기(儀器)는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올바로 처신하도록 경계하기 위하여 사용한 그릇이다. 기(欹)는 기운다는 뜻으로, 물이 가득 차면 뒤집어지고, 비었을 때는 조금 기울어지며, 절반 정도 차면 반듯하게 놓이는 그릇이다. 주나라 시대의 임금이 앉는 자리 좌우에 두고 보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알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 경계하는 데 사용한 그릇으로서, 중용(中庸)의 뜻과 상통하는 지혜를 배우고자 하였다.

이 기기·의기에 관한 이야기는 <순자(荀子)>의 <유좌(宥坐)>편에 보인다. 공자가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방문하였을 때 이 그릇을 보고 사당지기에게 무슨 그릇이냐고 묻자, 사당지기는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며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전용 자리 오른편에 두던 그릇으로서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습니다!" 라고 답했다. 공자가 "이 그릇은 비어 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게 놓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虛則欹, 中則正, 滿則覆)"고 들었다면서, 제자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그릇에 담아 실험해보니 실제로 그와 같았다(의기는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었다).
공자가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자 제자인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다. 이에 공자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지키고, 천하를 누를 정도로 용맹하면서도 검약으로 지키고, 천하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일러주면서, 그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또 <채근담(菜根譚)>에도 "기기는 가득 차면 엎어지고, 박만은 비어야 온전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에 거할지언정 유에 거하지 않고, 모자란 곳에 머물지언정 모두 갖춘 곳에 머물지 않는 법이다(攲器以滿覆, 撲滿以空全. 故君子寧居無不居有, 寧處缺不處完)" 라고 하여 욕심을 경계한 글이 보인다. 박만(撲滿)은 흙으로 만든 일종의 저금통으로 돈이 가득 차면 깨뜨려야 꺼낼 수 있으므로, 항상 비어 있어야 온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영배(戒盈杯)는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술잔의 이름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上記의 기기 혹은 의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현대의 '탄탈로스의 접시'라는 화학 실험기구와 그 원리가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백원은 전라남도 화순 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 년간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성리학자·실학자였다. 그는 계영배를 비롯하여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와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진다. 그 후 유명해진 우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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