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문학 작가들이 전하는 광양이야기-3

▲ 박계환 까치문학 작가

벌써 십칠 년이 되었나 보다. 집을 옮겨 보려고 이곳 아파트를 보러 왔을 때 앞 베란다에서 바라본 우산 공원은 별천지 같았다. 그때는 여름이었는데 울창한 숲과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 앞으로 쭉 펼쳐진 초록의 소나무들은 내 마음을 빼앗아 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나 혼자 즐거웠다. 남편에게 집이 마음에 쏙 든다고 통보를 하고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계약을 했다. 그렇게 이 집에서 살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뚜렷하게 변하는 사계의 모습에 눈 호강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늘도 남편과 산책하러 나갔다. 아파트 뒤로 돌아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평평한 산책길이 드러난다. 숨을 고르며 조금 걷다 우측으로 돌아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광양 출신 ‘독립 유공자 추모탑’과 조선 말기의 시인이고 문장가이며 애국지사인 ‘매천 황현 선생 동상’이 우뚝하게 서 있다. 우리는 묵념을 하고 추모탑 뒤로 돌아가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그 명단에는 남편의 고숙도 계셨고, 그이의 누님 두 분 시아버님 존함도 있다고 남편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대단하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분이나.” 며칠 전 어머님들을 모시고 천안 ‘독립 기념관’을 다녀와서인지 내 마음도 으쓱해졌다.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으며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 쉬어 가기로 하고 벤치에 앉았다. 남편은 자기가 오면 청설모가 꼭 나타난다고 하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 정말 조금 있으니 청설모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자기를 보라고 하는 건지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재주를 부렸다. 우리 눈은 청설모를 따라 움직이는데 그때 도토리 하나가 ‘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주우려고 일어나는데 남편은 줍지 말라며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청설모는 쏜살같이 도망을 가버렸다.

“당신이 소리치는 바람에 청설모가 도망갔어요. 나도 놀랐는데 또 올까.”

남편은 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깊은 산 토굴에서 있었던 일인데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이었다. 스님이 아침 공양을 준비하려고 새벽에 문을 열고나오니 댓돌 위에 벗어 놓은 검정 고무신 속에 다람쥐가 죽어 있었다. 스님은 마음이 너무 아파 세상 떠난 다람쥐를 위해 천도식을 해주었고, 그 뒤로는 살아 있는 다람쥐들을 위해 도토리묵을 만들려고 주워 두었던 도토리를 겨우내 조금씩 담장 위에 놓아두었다고 했다. 남편은 먹을 게 없으면 어쩔 거냐며 청설모가 주워 먹게 앞으로는 절대 줍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광양시 역사 인물 ‘설성 김종호 선생의 흉상’과 ‘추모비’를 지나 ‘이균영 숲속의 도서관’ 앞에 다다랐다. 팔각정에 도서관을 만든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어쩐지 초라해 보이고 마음도 서글퍼졌다. 남편이랑 연애할 때다. 여름방학 동안 서울 대학교에서 교사 자격증 1정 교육을 받으려고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이균영 씨가 그이와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이의 지인 중 제일 먼저 보았던 후배였다. 그래서인지 이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옛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집에 놀러와 남편과 애기 나누던 모습, 우리 아이들 세발자전거를 밀어주고 툇마루에서 아이들과 사진 찍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 더 머무르기가 싫어 빨리 가자고 남편 손을 끌며 오르막을 올라갔다. 등나무 밑 와상에 앉았다. 어쩌면 가을 하늘이 저리도 예쁠까. 몇 년 전 감물 염색한 천을 발색 작업한다고 남편이 고생도 많이 했던 곳, 분수대도 선선한 가을 날씨 탓인지 주변이 썰렁해 보인다. 남편은 우산공원에 오면 늘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고 하면서 열자(列子)에 우공이산(愚公移山) 우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옛날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중국 태행산 하북성 기주 남측과 왕옥산 하남성 하양 북측 경계선 깊은 계곡에 살았는데 춥고, 덥고, 바람도 세고 농토 거리도 없어 살아가기가 힘들었단다. 하루는 가족회의를 하였다. 앞산 뒷산을 들어내어 농토를 만들기로 하고 온 가족이 삼태기로 흙을 퍼내 계곡에 계속 갖다 부었다. 동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지만 노인은 내가 못하면 자식이 하고 자식이 못하면 손자가 하고 손자가 못하면 증손자가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냐며 열심히 흙을 퍼 날랐다. 노인이 말하는 소리를 산신이 듣고는 깜짝 놀라 천제에게 호소했다. 이 산이 없어진다면 우리 산신들은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이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간청을 했다. 옥황상제는 태행산은 산서성 동부 삭동으로, 왕옥산은 산서성 서남 옹담으로 옮겨 주었다. 노인은 덕분에 가족들과 잘 살았다고 한다.

나는 재미있다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했다. 그이는 나에게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고 무슨 일이든지 정성을 다하면 어려운 일도 이룰 수 있으니 나도 남은 시간들은 더 알차게 살아봐야겠다. 시월의 끝자락에 남편과 같이했던 시간이 잔잔한 행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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