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봉강 골짜기로 향하는 백운저수지 옆길은 요즘 공사가 한창이다.
나무들로 우거진 길을 넓히고 굽은 길을 바르게 펴느라 사람도 기계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안전하고 빠르게 길을 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만들어낸 큰 공사이지만 자연에게는 난데없는 수난의 현장이기도하다.

길가에는 당당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울창했던 숲은 민낯을 드러낸다.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질 때마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맨 땅에 나뒹군다. 마치 건장한 장정들이 한마디 말조차 못하고 쓰러지며 내지르는 비명 같기도 하다.

세월의 잔해처럼 남아있는 이끼나 잡초가 성글어진 언덕에도 요란한 기계가 닿으면 이내 상처 같은 속살이 드러난다. 아무 죄 없는 그들이 쓰러지고 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자연에게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지 길을 가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곳은 철따라 꽃을 피워내던 호젓한 꽃길이었고 굽이를 돌면 반갑게 얼굴을 내밀던 호수가 있어 참 아름다웠다. 자연의 속삭임과도 같았던 굽은 길은 점차 사라지고 횡하니 뚫린 길이 황량하고 차갑다.

그런 길가에 유달리 신경이 쓰이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팽나무였는데 잎이 하늘을 덮을 만큼 풍성해서 지날 때마다 눈에 확연히 들어오던 나무였다.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듯 그 나무는 길을 지켜주는 듯했다.

나무는 불행하게도 넓히기로 예정된 길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었는데 곁을 지날 때마다 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어떻게든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는 그 나무를 살렸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조금 굽어지더라도 나무는 길 가운데 그대로 두면 어떨까? 굽어지게 된 건 나무를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지지 않을까 ?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길을 기획하는 사람들도 나무란 존재를 위해 한 발 양보하는 배려심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 나무를 베어낼 때 ‘우리는 단지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과거에 맺어온 관계며 미래에 줄 기쁨까지 베어내는 셈이다.’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가 서있던 길을 지나갔고 그 지점에 이르면 한결 같이 서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시로 길을 가는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많은 이야기와 세월을 머금은 나무를 베어버린다면 자연을 배려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 자체가 너무 시시해지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보잘것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

우리가족이 예전에 살던 통일동산 부근에는 헤이리란 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해마다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와 독특한 마을 풍경을 감상하곤 하는데 어느 한 집에 이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집안에는 집보다 더 큰 나무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처음부터 땅에 서있는 나무를 건드리지 않고 집을 지었다.

벽과 천정에는 수많은 구멍을 내어 뻗은 가지들이 밖으로 나가도록 했는데 밖에서 보면 벽과 창과 천정으로 나뭇가지들이 손을 흔들며 살아있는 장식품이 되곤 했다.

그 집을 이해하려면 얼마간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무를 집안에 들이자면 어떻게 설계를 하고 벽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주인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아마도 나무를 생각하는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그들을 멈추게 하는 듯 했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도 그런 따뜻함 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팽나무 있는 곳을 지나다가 우연히 나무가 옆으로 눕혀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미 풍성했던 잎들은 사라지고 촘촘했던 가지들마저 잘린 채 뿌리는 꽁꽁 묶여있었다.

마치 팔다리를 잃어버려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환자처럼 보였다. 언뜻 보아도 옮기기에는 나무의 뿌리와 몸집이 너무 커 보였다. 나무 주위에는 그를 옮기기 위한 여러 대의 차량과 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어디로 갑니까?” 순간 울컥했으므로 나의 말에는 불손함이 섞여있었다
“아래 공원으로 간답니다. 그나저나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내 말투에 아랑곳없는 인부의 말꼬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누운 나무 옆으로는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파헤쳐진 흙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었고 그 옆으로 잘리어진 잔가지들이 수북히 쌓인 모습을 보니 다시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나마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는지, 다른 방법을 기대했던 내겐 몹시 실망스러웠다. 그 후로 나무가 서있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쏴아 ! 하고 찬바람이 들이치는 듯했다.

팽나무는 호수 옆 잔디밭에 비슷한 처지로 옮겨진 나무들과 함께 있었다.

모두들 유배당하듯 낮선 땅에 어눌하게 서 있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 그들이 서있는 주변은 더욱 공허해보였다. 쉽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참아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까마득히 잊혀지고 가지에는 아무일도 없었던 듯 새잎이 돋고 세상은 또 새롭게 흘러갈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위태롭게 서있는 나무를 쳐다보며 염려하고 안타까워했던 시간들은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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