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한국적응기

“한국생활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낯설기도 하고 두려움이 아예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외로움과 말이 통하지 잘 않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먼저 한국에 들어온 친구들이 힘이 됐고 무엇보다 세풍배구클럽 회원들과 함께 시작한 운동이 많은 도움이 됐죠”

연말이 다가오면 멀리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마음은 더 서늘해지기 마련이다. 몸도 마음도 급격히 내려간 기온을 따라 차갑게 내려앉는다. 거리가 북적거릴수록, 사람들의 웃음이 환한 눈송이처럼 날릴수록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과 태어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품어준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망망대해를 건너 사람도 낯설고 땅도 낯선 타국에서 한 해가 저무는 시기를 조용히 맞이해야 하는 바온(26)은 한국의 해넘이가 마냥 쓸쓸할 밖에 도리가 없을 일이었다. 바울이 처음 한국 땅, 그것도 한반도 남단 광양이라는 곳에 몸을 옮겨 온 것은 삼년 전이다.

언제나 그리움으로만 사무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들을 두고 훌쩍 네팔을 떠나 바울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난과 가난의 시대를 보낸 끝에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생을 딛고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에서야 해외여행이 붐을 이루며 관광비자를 손에 든 가벼운 발걸음들이 분주히 공항을 빠져나가지만 가난한 나라 네팔에서 태어난 그의 손에는 이질감이 뭉텅 묻어나는 취업비자가 덩그러니 들려 있을 뿐이었다.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선택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았을 이 선택을 두고 물론 아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막연한 불안감이 그의 한국행을 두렵게 만들었고 남겨질 가족들의 쓸쓸함에도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도 가족에게도 난생처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출국시간이 다가올수록 망설임은 커졌다. 그리고 처음 밟은 한국은 차갑고 눈부셨다. 화려하고 삭막했다.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바울은 그렇게 광양읍 세풍리 초입에 있는 한 축산업체에 짐을 풀었다. 축산업의 특성상 업체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꽤 떨어진 곳이다.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기숙사에 고요가 물든 밤이면 온 세상이 어둠을 잔뜩 뒤집어쓰는 외딴 곳이었다.

다행인 건 고향 네팔사람들 몇이 그곳에 먼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한국과 일을 경험한 이들이 외로운 한국생활의 버팀목이 돼 줬다. 일은 힘들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일은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3살 바울은 그렇게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바운이 3년째 일하고 있는 D축산에는 네팔인 3명, 키르키스탄인 3명, 캄보디아인 2명 등 모두 8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갓 키르키스탄을 건너온 막내(22)는 한국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이 됐다.

그러나 서로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료인 만큼 앞서 온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운도 이 막내가 낯선 한국생활을 적응하는데 작은 힘을 보탤 생각이다. 먼저 온 이들이 자신에게 그랬듯 외로움이 문득 찾아와 힘들어할 때 가만 다가가 그의 등을 쓰다듬어 줄 생각이다.

그리고 바온이 이런 막내를 위해 가장 먼저 손을 잡아 이끈 곳은 D축산에서 낮은 고개 하나를 건너 찾아가는 세풍배구클럽이다. 세풍배구클럽은 바온의 한국생활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일 가운데 하나다. 바온 뿐 아니라 이곳에서 생활하는 8명의 젊은 외국인 친구들 모두에게 말이다.

클럽회원들과 어울려 운동으로 땀을 흘리고 나면 무겁게 어깨를 누르던 외로움도, 피곤함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우연히 아버지뻘 되는 클럽 회원이 D축산을 찾았다가 “같이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따라 함께 한 세월이 벌써 2년째다.

무엇보다 다른 클럽과는 달리 세풍배구클럽은 세풍지역을 공유하는 선후배들이 중심이 돼 만든 클럽이어서 운동하는 내내 밝은 웃음과 정겨움이 가득 묻어나는 모습은 이들에게 때 묻지 않는 고향의 향기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2년 동안 함께 땀을 흘리다 보니 이제 클럽 식구들이 형님이나 누님 같다.

바온은 “고향 네팔에서도 배구가 인기종목이고 학교에선 누구나 배구를 배우기 때문에 좋아하는 운동이다. 우연찮게 세풍배구클럽을 찾아왔는데 회원들이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줬다”며 “직장 동료들과 클럽회원들과 어울려서 땀 흘려 운동을 하다보면 외로움이나 스트레스가 모두 다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좋은 점이 참 많다. 무엇보다 서툴던 한국말을 빨리 배우고 한국의 정서나 문화를 빨리 배울 수 있다”며 “회원들이 한국과 한국생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는 까닭에 한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세풍배구클럽 회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들 외국의 젊은이들은 클럽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월수목 일주일에 3일 클럽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회원들의 평균 출석률보다 훨씬 높다. 거의 100%라고 김용수 세풍배구클럽 회장이 일러준다. 배구실력도 그리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다. 수비나 공격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이다. 실제 이 젊은이들 가운데 4명 정도는 각종 배구대회에 클럽을 대표하는 선수로 출전 중이다.

김용수 회장은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클럽 분위기를 띄우고 활성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클럽활동에 열심이다. 다들 막내동생이나 조카 같아서 어울려 운동하는 게 참 좋다”며 “한국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외롭지 않게 즐겁게 운동하고 돈도 착실하게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온은 “고향에 돌아가 이곳에서 배운 기술을 갖고 고기전문식당을 열고 싶다거나 한국전문학원을 차려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등 동료들 모두 다양한 꿈을 안고 이곳에 왔기 때문에 지금 흘리는 땀이 고통스럽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나중에 성공하면 세풍배구클럽 회원들을 네팔로 초청해 한국에서 나눠준 정을 보답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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