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 중학교 3학년 김민서

▲ 용강 중학교 3학년 김민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의 생일에는 급하게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써내려간 다음에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그 편지를 전달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으며 편지는 누군가를 축하하는 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 이상의 의미도 역할도 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편지를 대신할 그 무언가가 나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이벤트 성 으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것 외에 생일 축하 편지 등과 같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마음은 디지털 기기가 대신한지가몇 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편지지든 색종이든 그것을 펼치고 보낼 대상을 떠올리며 느꼈던 희미해진 설렘이 그리울 때가 있다.

편지지가 메시지로 바뀌는 동안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 생활엔 많은 기계들이 자리 잡았으며 그것들의 부재는 불편 함을 가져다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작은 휴대폰 안에는 우리의 개인 정보들이 무수히 많다.

터치 몇 번으로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거나 그것을 퍼뜨리며 협박의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을 정도로 빅브라더 시대가 되었다. 편리함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사회현상은 이미 수많은 공장 굴뚝들이 배출한 오염된 공기로, 무한할거라 여기며 마구 써버린 자원의 고갈로 무참하게 파괴 되어 가는 생태계의 파괴로 우리 앞에 섰다.

포드가 자동차를 상용화 하는데 있어서 적용한 포드방식은 컨베이어 시스템을 활용하여 대량생산제품을 만드는데 적합했다.

하지만 컨베 이어 시스템은 작업자들의 단순노동과 그것의 반복만을 요구한다. 현대의 공장에서도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단순노동과 반복을 요구하는 것은 공장의 컨베이어 시스템 작업자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여러 직업들이 전문직을 제외하곤 노동의 반복을 요구한다. 충분히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직업들이 허다한 만큼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하이패스가 생긴 이후로 톨게이트 구간을 통과할 땐 직접 통행 세를 직원에게 전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되는 구간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 간 대형마트에는 많은 계산대 중 절반만 계산원이 있었고 일부는 무인 계산기가 손님을 맞이한다. 기계가 대신한 직업으로 생계를 빼앗길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으로 그런 사회현상을 보고 있을까.

국어사전에서 ‘진보’라는 뜻은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생활의 수준은 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그 나아진 것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탁과 탈수, 건조까지 되는 세탁기, 음성인식이 되는 냉장고, 이런 것들이 진보의 개념을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대량으로 태아를 생산하고 수면식교육으로 그들에게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것 외에도 다양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

성장시 조작에 의해 신분제가 등장하고 단순노동의 반복과 유일한 여가가 소마라는 마약과도 같은 약을 통헤 전체사회에 불필요한 자아 의식을 없애고 있다.

‘어머니’라는 말은 수치스러운 말이 되었으며 한 사람과의 사랑은 박물관에서 찾아야할 현재에는 통하지 않는 단어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것이 정녕 작가가 상상하는 미래라면 진보는커녕 퇴보라고 봐야 한다.

절대로 멋진 신세계 일리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편리가 가져온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과학기술의 발달을 멈추고 싶다.

여태 우리의 미래는 과학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다. 편리함과 소수가 정의롭다고 여기는 일을 최고라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

진정한 진보의 의미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생활의 수준일 것이다.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 보다 국가의 일원 이라는 소속감과 애국심을 바탕으로 동참하기를 원하는 모든 일에 의구 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고 그 중 한 사람이 되는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자유의지를 지닌 ‘나’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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