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문학 작가들이 전하는 광양이야기

▲ 양옥연 까치문학 작가

올해는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볼 요량으로 여름 끝자락에 휴가를 신청하였다. 휴가 첫날! 10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 때문인지 유독 뜨거운 긴 여름날들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에어컨 바람에 뒹굴뒹굴 구르다가 해가 질 무렵 운동 겸 산책을 나갔다. 먼지로 뿌옇게 되어버린 자전거를 꺼내 서천 둑 방천으로 신나게 달렸다. 강가에 펼쳐진 백일홍은 뜨거운 여름날을 잊게 할 정도로 예쁘게 피어 있었다.

서천 둑 방천은 희로애락을 담은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고, 친구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의 조각들로 모자이크 된 인생길이다. 이 아름다운 길 끝에는 내 고향 도월리 강변 부락이 있었다. 열다섯 정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옆 집 대소사는 물론 밥 먹는 시간,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도 서로 알 정도로 정겹게 부대끼며 살았다.

이제는 그 정 많고 순박했던 사람들과 집들은 사라지고, 높다란 철도가 동네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푸성귀만이 자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아쉬운 마음으로 새겨 놓은 조그만 표지석 마저도 공사 중에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아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릴 적에는 ‘강변부락’대신‘깽본부락’으로 불리는 것에 대하여 의문이었고 사투리라고 촌스러워 부끄럽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사소한 추억의 한 꼭지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

동네는 정부 시책에 따라 1995년도에 수해 지역으로 분류되어 이주하게 되면서 고향도 함께 사라져 갔다. 매년 여름이 되면 바다로부터 밀물과 해일이 밀려와 동네가 물바다가 된다. 특히 지대가 낮은 우리집 골목은 제일 먼저 물바다로 변해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물이 차 오른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자식 책가방을 가장 먼저 챙겼고, 앞집으로 피난을 보내곤 하셨다. 어느 해인가 할아버지 제삿날 제사상이 둥둥 떠 다닐 정도로 방안까지 들어와 아수라장이 되고, 둑 방천이 터진다고 읍내 서초등학교 강당으로 피난 갔던 일도 종종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물난리로 우리는 소중한 추억과 흔적조차 잃었다. 우리 가족은 어릴 적 흑백 사진 한 장이 없다. 제일 아쉬운 것은 액자에 걸어 두었던 부모님 결혼사진마저 없어졌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학창시절 수해 지역이라고 옷가지 등 보급 물품을 나누어 주면 어린 마음에 부끄러워 손도 들지 못했던, 그 어린아이는 이제 TV에서 물난리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시절 아픔이 전해져 와 마음이 짠하고 가슴이 저리다.

어릴 적 매일 소 풀 뜯기러 가고, 여고 시절 비 오는 날이면 하얀 운동화를 누렇게 변하게 만들었던 서천 둑 흙탕길은 시멘트 포장과 벚꽃 가로수로 낭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길로 바뀌었다. 잡초로 가득했던 허허벌판은 봄에는 화려한 꽃 양귀비와 노란 유채꽃, 여름이면 백일홍 천지, 가을에는 하늘하늘 코스모스로 수를 놓은 아름다운 벌판이 되었다. 이제 그 곳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광양의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는 친구들과 뛰어 놀던 어린 시절도 옛말이 되어 버린 지금, 흔적마저 사라져 간 고향을 찾아 그리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단어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을 에이고 저미게 하는 아픔이다. 눈물 나게 보고 싶고, 몸부림치게 그리워 소리쳐 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늘 영원할 것처럼 살아 온 내게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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