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전담기관 광양시니어클럽 반영승 관장

최근 AI(인공지능)가 대세라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사회복지사는 위협받지 않는 직종으로 당당히 뽑혔다. 하지만 사회복지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 헌신과 희생이 없는 한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오로지 ‘사회복지’라는 한 길만 보고 20여 년 동안 꾸준히 소외된 이들을 위해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무작정 광양시니어클럽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인터뷰 시작 전, 반영승 관장은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라고 말끝을 흐리며 멋쩍은 듯 재차 물었다.

▲ 노인일자리전담기관 광양시니어클럽 반영승 관장

“20년 넘게 사회복지라는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잖아요. 반영승 관장님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요. 분명 독자들도 궁금할 꺼에요”라고 답했다. 그는 긴장이 풀린 듯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반 관장은 순천에서 태어나 충청도에 있는 모 대학에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전에 있는 생명종합복지관에서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업무를 맡아 첫 실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98년 노숙인들이 넘쳐나던 IMF시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을 노숙인의 마음을 달래고, 자립을 돕기까지의 과정은 예상하는 것과 같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반 씨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삶의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몇 년 근무가 아니라 고작 몇 달이라 일한 이력이라 보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때 배웠던 것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생에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고향인 순천으로 내려와 순천장애인복지관에서 산재 장해인(업무상의 사유로 장애를 입고 장애인으로 등록한 산재 장애인을 뜻하는 말)들의 재활을 도왔다.
반 씨는 “산재 장해인들은 항상 술·담배를 달고 살았어요”라고 말하며 “아무래도 사고로 장애를 입은 본인 스스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이들의 상황이 위태로웠음을 짐작케 했다.

허나 이들은 결코 나약한 상태에 머무르고만 있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훈련프로그램 중 하나인 탁구종목에 매료되어 점점 달라진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힘들다는 지리산 종주는 물론 시 대표선수,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도맡았다.
달라진 건 반영승 씨도 마찬가지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과도기에 접어들었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고, 많이 지쳤었지만 그때함께 있었던 직업재활팀, 직업훈련팀, 그들의 변화는 저도 같이 성장시키기에 충분했어요. 함께 있었던 동료들의 지지와 격려도 물론이구요”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냐는 질문에 그가 사진을 꺼내 들었다. “이건 노인치매전문시설 사무국장시절 2010년 인도네시아 지진피해봉사를 가서 찍은 사진인데, 이곳에 복지관을 세운 후 지진동네 환경정비와 학생들 교육봉사를 했었어요. 2020년 이들의 완전자립을 목표로 ‘2020 희망아시아’라 이름 짓고 2주간 머물렀었죠. 봉사 마지막 날 행사를 앞두고 태권도 시범 리허설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지 뭐예요. 허탈함과 야속함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서있던 사진이에요”라며 그 날의 생생한 표정이 살아있는 본인을 가리켰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후 그는 전남사회복지사협회 사무처장직을 끝으로 현재 노인일자리전담기관 광양시니어클럽 관장을 맡고 있다.
반 관장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죠. 어르신들 또한 짧은 시간동안 뭐라도 하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해 하세요”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어 반 관장은 “지금 현재 나, 그리고 시니어클럽, 둘 다 광양에서의 ‘첫 걸음’이나 다름없어요”라며 “아직은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건 사실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광양시니어클럽을 통해 어르신들이 근로하는데 있어 문제없이 지원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는 사회복지사가 15년째 주목받는 유망직종으로 뽑힌 것에 대해 “최근 들어 사회복지에 대한 직업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유망직종이라고 해서 무작정 선택했다가 힘들고 어렵게 느껴져 금방 포기해버릴까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요”라는 견해를 밝히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이에게 애정 어린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또 “이 직업은 사명감 없이는 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라며 누군가의 욕구에 맞춰 돕는다는 것은 열정과 의지만으론 어려운 일임을 강조했다.

20여 년간 오직 사회복지라는 한 길만을 달려온 반영승 관장과의 만남은 짧지만 특별했다.
‘과연 우리는 우리와 피를 나누지 않은 장애인, 어르신, 아동 등 기타 소외계층을 위해 바라는 것없이 무조건적 헌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반문하게 만들었다.

광양에서 사회복지로 첫 발을 내딛은 반영승 관장은 언제나 변함없이 소외된 우리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살아갈 것이다.
먼 훗날 시간이 흘러도 그가 사람들에게 한그루의 느티나무처럼 힘들 때 기댈 수 있었던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광양에서의 반 관장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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