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부는 겨울입니다. 그러나 날씨보다 사람을 춥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일 것입니다. 웬만큼 세상살이를 겪다보면 사람과의 간극을 타고 불어 닥치는 외로움의 온도란 게 눈보라 치는 날씨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되는 일이지요.

그런 연유로 하여 사람들은 지지고 볶고 싸우는 와중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일 테지요.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말을 섞고 온기를 나누면서 그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사람의 냄새로 인하여 위로 받는 이유일 터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사람을 버팀 삼아 일생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잠시 내 주변을 살펴보면 일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형제자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인연으로 태어나 형제라는 끈끈한 인연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말입니다.

대개의 형제자매는 태어나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첫날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함께 합니다. 그 오랜 시간 쓰러지면 손잡아 일으켜주고 조금 뒤처지면 기다리면서 한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 인연의 울타리에서 좀처럼 벗어나는 일이 없지요.

물론 사소한 다툼에도 아주 써늘해진 채 인연을 끊고 사는 형제도 있습니다만 그러하여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형제애를 아예 끊어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피를 함께 나눠 가진 형제라는 이유로 사소한 언쟁에도 상처가 더 깊게 마련이어서 쉽게 아물지 못하는 일이라고 살피는 게 맞는 일일 테지요. 또한 단정할 수 없지만 가난한 유년시절,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견뎌낸 형제들의 경우 그 살뜰함의 넓이는 더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늘의 사진은 그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 여전히 우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형제의 사진입니다. 그것도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서로의 삶을 의지하고 살아온 일란성 쌍둥이 형제라네요. 오래 전 고향인 광양을 떠나 서울에 터를 잡았던 아버지는 쓸어져가는 가난한 삶을 형제에게 물려주었으나 일란성 쌍둥이 형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서로의 둥지를 틀고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면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좀 번외적인 이야긴데요, 흔히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아프면 다른 한 명도 아프다고도 하고 한 명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한 명은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등 특이성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동시에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지요.

얼마 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쌍둥이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해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하나같이 “있다”고 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쌍둥이 남성 듀오량현량하의 형인 량현은 “계곡에 놀러갔을 때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동생이 계곡 물에 휩쓸려 간신히 바위를 붙잡고 있었다”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동생은 소리를 지른 적이 없다더라”고 했고 또 가수 허각의 형 허공은 “갑자기 이상한 기분과 함께 어떤 장소에 가고 싶어져 그곳에 갔더니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있었다”는 경험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들의 정신적 교감, 다시 말해 텔레파시가 통한 건 아닐까요.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을 위시한 몇몇 학자들은 쌍둥이의 약 3분의 1이 텔레파시와 같은 현상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기도 합니다. 쌍둥이는 신체적 특징은 물론 정신적 취향까지 필연적으로 동일성을 지닌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지요. 일부 학자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일반인은 물론 이란성과 비교해도 심리적으로도 더 친밀한 관계를 보인다고 보더군요.

참, 몇주전 김장을 하던 어머니는 생각보다 많은 김장을 담그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요. 지난해부터 다소간 몸이 불편하신 이모님 두 분을 위한 것임을 알았던 겁니다. 여든을 코앞에 둔 어머니, 결코 녹록치 않았던 당신의 삶을 여기까지 밀고 올 수 있도록 든든한 힘이 돼 준 건 다름 아닌 형제자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도 오늘은 가까이 사는 큰형님께 술 한 순배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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