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젊어 삶이 즐거움으로 충만하던 시절 “영감나 좀 데려가 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노인 죽고 싶다’는 말은 ‘처녀 시집가기 싫다’는 말과 ‘장사 본전에 판다’는 말과 함께 나 역시 3대 거짓말 쯤으로 생각했다. 시장보고 오는 길 느티나무 아래 풀밭에 몸을 앉히며 “다 먹어도 나이 먹을 것은 아니다”는 촌로(村老)의 말은 그저 늙은이의 푸념정도로 들렸다.

“웬 센 놈의 엉덩이가 몸서리 나게도 무겁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크게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모든 것이 변하듯 죽음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변하는 것같다. 소위 ‘나이 값’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깨달음에 인류가 유구한 역사 속에 쌓아 온 ‘지혜의 속삭임’이 더해진 값인가 보다.

어느 날부터인가 문득 삶의 기쁨이 불편함으로, 때론 고통으로 다가오고, 그 시간의 차지함이 육중해짐을 느껴본다. 좀 더 가까워진 늙음과 죽음에서 마저 행복을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어리석음이나 오만일까?

그 속에서도 마음의 위안과 행복을 찾아보고 싶다는 역설적 생각을 해보며 희망을 가져 본다. 행복의 인식이 절대개념에서 비교위주의 상대개념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요즈음이면,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 자위하며 위로정도는 받을 것 같기도 하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존엄한 죽음의서’라는 글을 다짐하며 산다.

겸손으로 퇴고(堆敲)할 노래여
사랑하는 처자식 지켜보는 앞
내 인생 마지막 자존 지키며
아직은 견딜 만 하다고
정말로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이제는 푹 쉬어도 여한 없다고

성찰로 탁마(琢磨)되어야할 보석이여!
내 생애 최고의 미소보이며.
최선을 다해온 삶이었노라!
붙들려 가지 않고 찾아간다고.
당당히 가슴 펴고 떠나간다고!
제발부탁이니 깨우지 말라고.


처음 이글을 쓸 때는 솔직히 객기가 반이였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꾸준한 자기다짐을 통해 이제는 조금씩 신념으로 가다듬어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힘의 바탕은 꾸준한 공부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신은 너무 멀고, 철학은 너무 복잡하니 자연을 눈여겨보라는 말이 있다.

혼자의 기도는 서툴어도. 일상을 통해 “신은 말하 려는 것을 눈앞의 보이는 곳에 뒀다”는 말에 관심 이가고 이해도 조금은 된다.
틈틈이 읽는 책속에서 지혜로운 분들의 충고를 익히고 쌓으며 ‘존엄한 죽음의서’를 꾸준히 퇴고 하고 탁마 한 덕일까? 마음의 고요함을 깊이 심호흡 하며,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누구에게도 크게 부담주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길 다짐하며 실천해보기도 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희망하면서도 성취에 얽매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그 과정을 즐기기를 소망한다.

나의 몸이 쇠하여지고, 오감이 무디어지며, 영혼이 건조해 지더라도 의미 없는 삶이라 쉬 단정 하지 않고, 내 의식이 존재하는 한 고통 까지도 생존의 의미라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
새로움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생기를 회복할지라도, 스스로가 의식의 주인이 될 수 없는 너머까 지의 연명은 희망하고 싶지 않다는 용기도 생겼다.

나이 들며 가장 소중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잘 먹고, 쾌변하고, 숙면하는 것 못지않게 양심을 맑고 튼실하게, 미흡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닦아가는 것이다.
나의 욕심대로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가치 있는 만큼 대접받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만큼, 아니 최소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이 세상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17년 만에 재개봉 예정인 참 좋았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이탈리아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자란 ‘도라’는 약혼도 파기하고, 가난하지만 넘치는 재치와 유머를 가진 착한 주인공 ‘귀도’을 선택하고 결혼한다. 유대인이 아니면 서도 남편과 아들 ‘조수아’만을 보낼 수 없어 아우츠비츠 수용소 행 열차에 오른다.

타는 기차마저 칸이 다르고, 수용소 또한 방을 갈라놓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지내다 세상 끝까지 같이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5남매의 막내둥이로 나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차례로 부모님과 형님누나들을 떠나보내며 이별에 아쉬워했다.

나는 자석에 끌리듯 그분들이 언젠가 손짓해오기를 희망하며 산다. 언제나 그러하듯 그 분들의 보살핌 속에 막둥이인 나는 또 한 번의 마지막 행운이 주어질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언젠가 고통이 버거워져 육신을 누이고 받아 들이는 내게 허용된 ‘생명선’과, 나름 최선을 다했다 자위하며 더 욕심내지 않고 쉬고 싶다는 내의 지의 ‘삶의 선’이 크로스 되는 점하나에서 빅뱅의 섬광처럼 화려한 불꽃 속에 찬란히 산화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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