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고개를 들면 멀리 산들이 빛 바라기를 하듯 태양을 향해 누워있다. 가끔 바람이 부는지 가까운 산에서 흔들리는 나무들의 움직임이 마치 산을 살아있게 하듯 잔잔하게 부서진다.

그러나 멀리 있는 산은 미동도 없다. 멀고 높은 산들도 분명 움직이지만 나의 눈은 다만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멀리 있는 것은 왜 보이지 않는지, 나는 왜 가까운 것에만 눈이 가고 기억되는 것인지, 우리 앞에 놓인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한 것은 아닌지.

세월 따라 이 땅에 존재했던 삶들은 모두 사라져가건만 유독 산만은 그 자리에 남아있다.

어쩌면 이 땅에 생명체들이 살기시작하면서 진행된 이야기들이 마치 해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비바람에 섞이며 시나브로 쌓여가듯 점차 높은 산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간절함과 치열함, 뜨거움과 냉정함, 처절함이 꾹꾹 눌러진 채로. 산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진리란 오랜 시간을 두고 질서 있게 쌓여진 것들을 말함이며 그들이 있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균형의 추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스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했던, 산 속에 깊이 덮어있는 것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땅에서 먼저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그러하다.

수년 전부터 겨울이면 여러 날을 야생동물처럼 도솔봉 골짜기를 누볐다. 때때로 한계를 알 수 없는 산 너머에서 산돼지들이 싸우는지 산이 떠나갈 듯 포효하는 소리에 오싹하기도 했지만 백운산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란 아슬아슬한 믿음만으로 견디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아주 오래된 고로쇠나무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매년 2월 초순이면 지리 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고로쇠 수액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마시면서 다가올 봄을 기다렸다.

나무는 한 해에 한 번씩 헌혈하듯 그의 몸에 저장된 수액을 내어주며 대대로 사람들의 건강을 챙겨주었다. 여러 시간을 걸어서야 닿은 산비탈에는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아름드리 고로쇠나무들이 한 마을을 이루듯 모여 있었다.

나무 기둥들마다 하늘을 떠받치듯 우뚝 서있는 모습이 마치 비밀스러운 신전(神殿)을 연상케 했고 그곳에서 세상의 선과 악, 바름과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관장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나무들이 밀집된 숲에는 숨 막힐 듯한 적요함과 맑은 바람에 눈이 베일 듯한 청정함이 머물렀고 간혹 나뭇잎의 바스락거림이나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새들의 맑은 소리가 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나무들은 결코 낯설지 않았고 나는 사람, 너희들은 나무로 서로 어울리면서 점차 자연을 이루는 일부가 된 듯한 동질감이 생기기도 했다.

깊은 산에는 나무들만이 옛날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골짜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숯 가마터에는 쌓여진 낙엽사이로 모래알 같은 숯 알갱이 더미를 남겼다.

산에 머물던 사람들은 비교적 평탄한 골짜기에 돌담을 쌓고 흙을 바르고 큰 방을 만들었고 그 속에 강하고 단단한 참나무를 눕혔다.

아무리 아우성쳐도 빈 메아리만 들려오는 곳에서 그들은 쉼 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피어오르는 진한 연기를 통해 그들의 존재와 긴 외로움을 울부짖듯 세상에 알리곤 했다.

숯가마에서는 이글거리는 뜨거움과 기다림의 시간들도 차곡차곡 쌓여야 검고 단단한 숯을 얻을 수 있었다.

세월에 씻기며 흩어진 숯 알갱이 속에는 그들의 검게 타버린 애간장이 녹아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피비린내 나던 여순사건 후 백운산으로 숨어들었던 빨치산들이 머물렀던 방호벽도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한국전쟁까지 이어진 오랜 피신과 극도의 긴장, 춥고 배고픔에 지칠 법도 했으련만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이 거칠고 황량한 겨울 산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겹겹의 골짜기를 방호로 삼아 그들의 끈질기고 치열했던 삶도 상처도 지워지고 무심한 풍경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쌓여진 세월의 층을 한 겹 더 들추어 보니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더욱 또렷했다. 높은 능선에 올라 먼 곳까지 훤히 시야가 닿을 수 있는 평지이거나 산들이 서로의 허리를 둘러싼 지점에는 으레 세월에 허물어진 절터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아무리 높은 곳일지라도 샘물이 흘렀고 우물터에는 지금도 물이 흥건히 골짜기를 적시고 있었다. 절이 있던 자리에는 모든 흔적들이 지워졌고 다만 주위를 감싸고 있었던 담벼락만 초연했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삶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피로했던 탓이었을까?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했던 사람들과 속세를 벗어나 수행의 길을 가려던 승려들도 백운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예전에는 골짜기마다 암자가 40여 개가 있어서 수행하는 스님들도 40여 명이나 되었고 스님과 남녀 신도의 숫자만도 천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성불사 입구에는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 지며 군데군데 패인 돌확들이 계단 옆에 누워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 무려 천 년을 이어온 시간들이 숨 가쁘게 다가선 듯했다.

계곡에 잠겨있는 큰 바위를 돌아나가는 세찬 물길은 12개나 되는 물레방아를 돌리며 곡물을 빻았다. 끼니때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냇가에 나와 쌀을 씻었는데 그 때마다 흐르는 냇물에 쌀뜨물이 섞이며 계곡 전체가 하얗게 흘렀다 한다.

깊은 산골짜기마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하얀 물이 계곡을 따라 암호처럼 흘렀던 날의 풍경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깨진 기왓장과 세월에 휩쓸린 채 거칠어진 돌확 몇 개가 그 때를 말해줄 뿐이다. 그 때 산자락마다 흘러넘쳤던 사람들과 많은 사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오늘도 백운산에서 뿌리를 내민 거뭇한 고목의 몸통에 붙어 기생하는 벌레와 이끼들과 천방지축으로 뻗어나간 넝쿨들 까지도 긴 역사를 이끌어오는 삶의 분명한 회로처럼 자라고 있었다. 누구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구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성장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에게 늘 그러한 일을 해주고 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 사라진 문화들이 처음부터 약속된 수순인 양 밑거름이 되어 백운산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본다. 지금도 우리는 살면서 그 깊고 큰 힘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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