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진(광양 중학교 3학년)

‘일일생활권’ 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영역이 지역을 넘어서 전국으로 확대되어 생겨난 신조어이다. 하지만 요즘 ‘일일생활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더욱 빨라진 발전 속도를 체감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장 이래로 의사소통 환경이 새롭게 구축되고 자율 주행차, 초음속 여객기 등 교통수단의 발달이 거듭된 끝에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착수한 남북철도 연결 사업은 이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 분명하다. 지구라는 하나의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촌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당장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의 환경에 애착을 가진다. 옆집은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아랫집은 주민 복지, 주민갈등 때문에 이사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역 공동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의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이태석 신부의 인류 초월의 주민의식을 본받아야 한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유일한 의사였다. 하루에도 3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그를 보기 위해 1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오는 환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의 역할은 의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계몽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우물을 파고, 심지어는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학교 학생들과 공연을 다녔다. 그는 명예, 경제적 부를 모두 접어두고 어려운 지구촌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헌신했다.

과연 우리들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나도 그 일을 회피할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내 문제가 아니기에 힘든 여정이 될 일에 선뜻 나서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온정을 베풀기보다 외면이 빠르고 큰 이변이 없는 한 굳이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오래되지 않은 일에서 그 예를 실감했다.

2018년 대한민국 최대의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제주 예멘난민 사태이다. 이 문제는 2019년 새해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강한 긍정도 강한 부정도 아닌 입장이다. 다만 평소 정치에 관심이 있는 학생으로서, 미래의 정치가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제주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싶다.

2015년 예멘에서는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의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예멘 국민 28만여 명은 2017년 11월 기준 예멘을 떠난 난민의 신분을 갖게 되었고 그중 일부는 제주도를 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많은 나라들 중에 어째서 우리나라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난민 협약’과 ‘난민법’에 있다. 1992년 12월 대한민국은 ‘UN 난민협약’에 가입했으며, 2012년 2월 10일 ‘난민법’을 제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의 처지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내 치안 안보 문제, 일자리 문제, 난민 보호에 따른 비용 등의 문제로 제주 도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물론 유럽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 폭력 시위 등을 대중매체로 많이 접해온 우리들로서는 두렵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민생 악화, 남북문제와 같은 중요한 현안들이 많은 시점에서 난민문제와 같은 우리 일이 아닌 ‘남의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도 과거에 난민이었으며 앞으로도 난민이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도 난민이 되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선조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피폐함을 넘어서 황폐해졌다. 길거리는 썩어가는 시체들로 넘쳐났고 하늘 높이 솟은 건물들은 땅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우리 국민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민 이들은 유엔 난민기구이고 세계 각지의 여러 나라 단체들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아직 분단국가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전개된 이후로 한반도에 따스한 기운이 도래했지만 완전한 평화가 찾아 온 것은 아니다. 어떤 예상치 못한 방법에 의해 잠재된 두려움이 현실로 표출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난민문제를 남의 일로 볼 게 아니라 지구촌 주민의 문제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혼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게 사람이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즐기고 함께 슬퍼함으로서 인류는 구석기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만약 우리가 제주 예멘 난민들을 방관하고 ‘남이라서’ 배척한다면, 우리의 삶에 업그레이드(upgrade)는 없을 것이며, 오직 다운그레이드(downgrade)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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