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셀러협동조합 ‘THE 플리마켓 & 카페를 중심으로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시작한 일중에 하나가 정의당 광양시 여성위원장으로서 페미니즘 정치학교에 입학하는 일이었다.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모여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를 듣고 ‘젠더와 사회’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젠더와 노동시장이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개선되었다고 할 수 없다. 결혼과 임신, 출산 후 양육기의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장을 당하는 현상이 이어져 왔다.

이는 성별의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 되었고 돌봄노동은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사회적 조건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또한 가족 돌봄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노동시장에 진입하기를 희망한다. 여성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여성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정치학교를 계기로 나는 우리 주변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작년에 결성한 ‘광양 셀러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셀러협동조합은 프리마켓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광양시가 양성한 수료생들이 주축이 되어 3개월 전 중마동에 가게를 열었다. 처음 셀러(seller, 파는 사람)들의 가게를 방문했을 때는 약간의 분주함과 흥분함이 느껴졌었다.

그 이유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가게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없는 일반 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솜씨 하나만을 믿고(?) 협동조합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환한 웃음과 함께 ‘나도 할 수 있다. 아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신념이 보였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다시 셀러들의 협동조합을 찾았다. 3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환한 웃음과 함께 계이름에서 ‘솔’의 음정이 느껴지도록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찬찬히 셀러들과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다.

“ 이것 좀 드셔보세요, 제가 직접 만든 것인데 오늘 처음 가지고 나왔습니다”

올갱이묵, 도토리 묵, 청포묵을 팔았던 셀러는 매주 수요일 조합원이 아닌 외부 셀러들도 참여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해서 처음 프리마켓을 열었다고 한다. 평소에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을 처음으로 판매하게 되었다는 말에서 약간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졌다. 오늘 장사가 처음인 또 한분의 셀러는 늦게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일을 가질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슬라임(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 재료를 구입해서 만들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고 프리마켓의 판매대에 당당히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소질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참 기쁘다는 말을 덧붙였다. 출입문 바로 앞에서 토분을 파는 셀러는 자녀를 다 키우고 나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사회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셀러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을 이해하고 힘을 보태주었기에 후배 셀러를 양성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셀러들의 갈 길이 멀다고 하면서도 후배 양성을 계획하는 포부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3개월 전부터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계시다는 셀러에게 이곳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이곳은 나의 놀이터예요. 솔직히 수익금은 많지 않지만 이곳에 오면 시간이 금방 갈 정도로 재미있어요”

장사를 하는 것은 곧 이익을 창출하기 위함인데 수익금이 많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셀러들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손님이 있을 때는 손님들과 대화하며 웃고 손님이 없을 때는 이웃집 셀러들과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웃는 것 같았다.

조합원 중에는 정년퇴임을 하신 후 바느질로 만든 물건을 판매하시는 왕언니 셀러들도 계신다. 그러고 보니 셀러들의 연령층이 다양한 것도 이 협동조합만의 특징이다.

“우리들이 나이를 먹었다고 절대 싫어하지 않아요. 젊은 셀러들이 우리 물건이 잘 팔리도록 진열 해주고 사진도 찍어서 SNS에 올려주기도 해서 덕을 참 많이 보고 있어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면서도 바느질을 멈추지 않는 열정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프리마켓을 한 바퀴 둘러보니 엄마의 솜씨를 대신 판매하거나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농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이들의 특징은 1인 사업자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이기도 하고 판매자(셀슈머, Sell-sumer)이기도 하다. 이들이 셀슈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출산 후 경력단절의 상태에서 가족 돌봄의 주체적 역할을 해왔지만 자아실현만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취미와 솜씨를 개발하여 전문성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었지만 자영업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창업의 자신감마저 없을 때 이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셀러들의 협동조합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은 마치 세포마켓(Cell Market)처럼 유통의 새판짜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셀러들이 도전하는 유통의 새판짜기는 플랫폼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공감을 이룬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곳은 셀러들이 말했던 상호교류의 장이 되는 놀이터와 같은 직장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즐겁다’ ‘재미있다’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걱정보다 희망이 보인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여성과 노동시장의 이야기로 돌아가려 한다. 여성이 일하고자 하지만 결혼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가족 내에서 ‘무임’으로 이루어지는 돌봄노동 외에는 적극적 환영을 받는 곳이 없다. 하지만 여성이 사회적으로 소속감을 갖고 남성과 같은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셀러들의 협동조합은 여성의 목소리를 사회에 반영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동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셀러들은 지역의 여성 노동시장을 새롭게 형성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페미니즘 정치학교 초보인 나는 셀러들의 마음을 엿보며 이들의 과감하고 대단한 노력에 ‘우리가 가면 길이 됩니다’ 라는 파울로 프레이리와 마일스 호튼(Paulo Freire & Miles Horton)의 대화를 인용하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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