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액관리제로 안정적인 월급 보장돼야

사측 “근본적인 원인은 현저히 낮은 택시요금”
기사 “택시 경기 좋을 땐 사납금제 실시했나”

광양지역 택시기사들이 강도 높은 노동에 비해 급여수준이 낮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들은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며 “이게 다 형태만 변했을 뿐 아직도 명맥을 유지한 채 시행되고 있는 ‘사납금제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근속년수 16년차에 접어든 택시기사 최 모 씨는 운전석 한쪽 서랍에서 사납금 130000원을 채우기 위한 갈색 봉투를 꺼내 보이며 “이것을 택시기사들이 뭐라 부르는 줄 아는가. 피를 담아서 보낸다 해서 ‘피 봉투’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사납금제, 전액관리제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사납금제란 택시운수 종사자들이 하루에 버는 수입 중 일정액(사납금)을 회사에 납입하고, 초과 부분은 수입으로 가져가는 제도를 말한다.

사납금제는 택시기사 입장에서 운송수입금을 많이 버는 만큼 수입을 거둘 수 있기에 장거리 운행을 선호하게 되고, 합승, 신호위반, 부당요금징수 등의 문제가 파생됨에 따라 1999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정부는 20여 년 전부터 사납금제도 대신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로도 불리며 택시기사가 하루 동안 번 돈을 모두 회사에 내는 대신 기사에게 기본급과 수입금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도록 강제했으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94조 제1항 제3호 및 제85조 제1항 제19호는 위와 같이 전액관리제를 실시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사업자에게 과태료 부과 및 면허 취소나 정지 처분을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광양지역 택시회사들은 운송수입금의 전액을 납부하고, 기준금(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겉으로만 전액관리제의 허울을 쓴 업적금제(성과급제)를 시행하며 여전히 사납금제를 고수하고 있다.

취재 결과 광양지역 택시회사는 광양택시, (유)동광양, (주)백제, (유)금녕, (유)일광택시, (유)광양대성, 옥곡택시, 진상택시, 진월택시, (유)신흥택시 등 총 10개사, 택시 수는 법인택시 181대, 개인택시 230대, 이중 매화콜을 사용하고 있는 택시는 법인 44대, 개인 186대, 총 230대로 확인됐으며, 택시회사의 평균 월급은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 기준, 하루 평균 20~25만 원을 번다고 봤을 때, 보통 평균 기준금(이하 사납금) 8만 원에서 13만 원, 가스연료비 지출 4~5만 원을 제외한 근속년수에 따른 평균 기본급 20~50만 원을 더하면 월평균 수입은 120~150만 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운수업 평균인 170만 원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 그친다.

광양지역 한 택시회사는 “하루 운송수입금 전액 입금 후 기준금 8~13만 원 외 그 이상의 수입금은 환급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는 불법행위가 아니다. 운수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되 노·사가 협의 하에 업적금제(성과급제)를 했을 시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7년 서울시와 모 택시회사의 소송에서 재판부는 전액관리제는 택시회사가 기사의 운송수입을 전액 수납할 의무만 규정하고 있지 다른 규정이 없는 만큼 수입금 배분은 관련법에 따라 노·사가 자율 합의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며, 해당 회사가 월 기준 운송수입금을 초과한 금액을 근로자들에게 성과급으로 주고 기준에 미달할 경우 월급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수입금을 배분한 것은 전액관리제 위반이 아니라며 택시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위 사례와 같은 법의 모호함을 타개하기 위해 택시기사 김 모 씨가 발 벗고 나섰다.

전주시에서 택시를 영업하는 김 모 씨는 사납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기본급에서 공제되어 지급되는 현 택시상황을 꼬집으며 전액관리제 요구와 함께 “비단 전주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택시현장의 문제이며, 전국의 택시노동자들의 요구다”라고 외치며 조명탑에 올라 510일간 고공농성을 펼쳤다.

510일 동안 망루에서 농성을 펼치던 그가 고공에서 내려오게 된 이유는 지난달 23일부터 총 10여 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나온 합의안에 따라 전주시가 택시회사와의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전액관리제를 거부한 택시회사에게 과태료 처분과 함께 감찰 및 사업정지처분을 내리겠다는 결정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주시는 택시회사 차고지를 6개월마다 1차례씩 방문해 월급제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지도·점검하고 택시 운행정보 관리시스템 또한 따로 운영키로 했다.

택시업계 정상화, 노·사 협의 통해 갈등조절 필요

광양지역 택시회사 입장은 “강도 높은 노동에 비해 기사들이 급여수준이 낮은 것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택시요금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택시회사 측은 “기준금(사납금)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택시요금 문제라고 생각한다. IMF가 터지고 나서 부터 택시만 요금 반영을 전혀 받지 못했다. 택시요금 자체가 낮다 보니 기사들이 근로시간에 비해 버는 수입이 월등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28년 간 1800원이 오르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 이곳은 요금이 어느 정도 맞게 떨어져야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물가는 오르지만 수입은 낮아지니 기사들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 지는 것”이라 설명했다.

또 “버스처럼 노선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택시영업의 특수성 때문에 택시요금인상 등의 획기적인 정책이 없는 이상 전액관리제 시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준금 없이 운영되는 택시회사가 기사를 통제하는 수단은 전국에 거의 없을 것”이라며 “월급이 알아서 나오니 분명 반대로 장거리 운행을 꺼려하게 될 것이고, 바쁜 시간엔 일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될 텐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택시회사 측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전액관리제를 실시할 경우 근무태만 등으로 회사경영과 유지에 필요한 수입금 확보가 어려워진다”며 “모두에게 똑같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능률에 따른 분배원칙이 어긋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9년째 광양에서 택시를 몰고 있다는 택시기사 한 모 씨는 “너무 힘들다. 이름만 다른 사납금제가 당연시 되고 있다”며 “전주시처럼 광양시도 전액관리제를 실시한다면야 물론 반갑겠지만 이를 정부와 지자체에서 밀어 붙인다 한들 부족한 예산과 택시회사의 운영유지 자금부족을 들먹이며 지금처럼 전액관리제의 허울을 쓴 온갖 편법이 나돌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 씨는 ‘택시회사가 말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택시요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말도 안 된다. 택시요금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택시 경기가 좋아 수익금이 높았을 때도 사납금제를 실시하지 않았냐”고 답했다.

이어 그는 “전액관리제를 통해 안정적인 월급을 보장해주고 성과와 성실도에 따라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면 더 벌 수 있는 조건인데 누가 열심히 일하지 않겠는가. 상습적으로 불성실을 저지르는 기사들에겐 이 같은 행위가 누적될 시 관리 및 교육을 시키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본다. 미터기에 손님이 몇 명 타고 차 문을 몇 번 닫고, 몇 분 간 운행했는지 시간까지 다 나와 택시기사들의 불법행위를 모를 수가 없으며, 또한 기사들이 조작할 수 없게 잠금장치까지 되어있다. 현금을 주고받은 내역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택시 안에 CCTV 하나 달면 된다. 그것도 가능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물론 택시업계의 현행체제를 한 번에 확 바꾼다는 것은 확실히 어렵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의 문제다. 탁상행정이 아닌 밑바닥에 있는 택시의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양시의 입장은 어떨까. 기준금이 정해져 운영되는 택시현황에 대해 광양시는 “사납금제도는 불법이다. 그러나 현재 택시기사 시행하고 있는 업적금제도(성과급제)는 노·사간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위반행위라 보기 어렵다”며 “아무래도 택시 경기가 어렵다보니 기사들의 대한 처우개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시에서는 택시회사를 방문해 운행일지, 운송수입구조, 납부일지 등을 확인하며 주기적 단속을 시행 중에 있으며, 전주시 사례는 좀 더 명확히 살펴본 후 광양시에서도 시행할 부분이 있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CTV설치 의견에 대해 시는 “이는 택시기사마다 입장이 다를 것이다, CCTV설치는 ‘강압적이다’, ‘억압이다’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택시업계 일이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택시업계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사 협의를 통해 갈등조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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