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광양중학교 3학년)

▲ 이종진 광양중학교 3학년

드디어 426일이라는 긴 시간 끝에 굴뚝 농성은 노사 측의 극적인 합의로 막을 내렸다. 크리스마스를 차디찬 굴뚝에서 보낸 박준호 사무장을 비롯한 두 노동자들이 설날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어 실로 다행이다. 임금 협상 문제로 시작된 이번 농성은 408일간이던 2014년 굴뚝 농성 이후 두 번째 굴뚝 농성이며, 세계 최장의 기록을 갱신한 셈이다. 그러나 처절한 굴뚝 위 농성의 결과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다는 안도감 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준에만 그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의 수출 제일주의 정책 아래 노동자들은 극도의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근로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단을 하다 손가락이 잘렸고, 탁한 공장 공기로 폐질환을 앓게 되었다. 국가의 발전을 취하려고 국민들의 인권을 내버린 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박정희의 독재정권 때문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정경유착이란 단어를 생성해낸 이들은 어느 모로 보나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콕 집어 누구 탓으로 돌리기엔 지나간 시간이 차고 넘칠 정도로 실물인 기록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유일무이한 발전을 이룩했다.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이 세계에서 위상을 펼치고 있으며,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를 한류라는 돛으로 순항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보장은 급속한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나라 최고 직장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백혈병에 걸렸지만 회사는 이 일을 엄폐하기에 급급했다. 또한 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대형마트, 홈플러스는 인상된 최저임금을 임금에 적용하지 않아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설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처럼 많은 노동자들이 인간성이 상실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상품 생산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며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존중도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그들의 근로 모습을 매체로 접할 때면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현실 개혁에 대한 의지 없이 스스로 원민(怨民)이길 자처한다.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호민론’에서 백성들을 지금의 현실에 체념하고 살아가는 항민(恒民), 현실을 원망하지만 개혁 의지는 없는 원민(怨民), 본인의 처한 현실에 의심을 품고 변화를 도모하는 호민(豪民)으로 나누었다. 이 세 부류 중 윗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세력, 다시 말해 기업가들이 무서워하는 세력이 바로 호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본인의 처지를 체념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보다 능동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일제의 식민지 농업 정책에 저항했던 조선의 농민들처럼 말이다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의 사하촌 농민들은 보광사라는 사찰 소유의 전답을 얻어 살아가는 소작농들이었다. 보광사 소작인들은 해마다 소작료, 소작료의 서너 배가 넘는 조합비, 호세, 비료대금과 그것에 따른 이자를 바쳐야만 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작물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바칠 수확물이 없었다. 이에 성동리 대표로 구장 이외 고서방, 들깨, 또쭐이가 대표가 되어 보광사 농사조합으로 갔다. 하지만 그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비료대금 지불 기한은 연기되지 않았고 그들의 논에는 압도 차압표가 붙기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소작농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주장하며 비장한 각오로 절을 태우러 떠난다. 일제강점기라는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성동리 소작농들의 모습에서 호민(豪民)의 기운을 엿본다.

노동자들은 갓난아이가 아니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누군가 먼저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삶의 주체는 그들 스스로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하고 자신들의 권리는 각자가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체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 인간에게 적대적인 현실은 모든 인간에게 적대적인 현실일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아픔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짙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촛불국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은 촛불국민의 수치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2016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역행이다. 우리에게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말해야 한다. 성공은 감히 시작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다 함께 외치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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