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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활 #현타 #워라벨없어주아라 기자의 말 말 말!
주아라 기자  |  jje30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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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5  1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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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 ‘현실자각타임’의 줄임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처한 실제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워라벨: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

지역신문사에 입사 후 처음으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꼈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내며, 취재 중 있었던 웃픈(‘웃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일 때 쓰이는 말) 에피소드 들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편집자 주>

기자의 ‘이상’과 ‘현실’

기자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다. 대표님께서 해주신 여러 이야기 중 “기자는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하고, 발로 뛰는 기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수습 때라 그런지 열정이 불타올랐다. 정말 발바닥에 불나도록 열심히 발로 뛰었다. 마치 몸이 10개라도 되는 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녔다. 그런데 일주일, 한 달, 두 달 점점 시간이 흐르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지역에 대표적인 현안이나 심각한 사건, 특별한 특종이 아니고서는 소소한 취재현장에는 나와 대표님만 덩그러니 있다는 것.

“뭐야. 다른 기자는 왜 없어, 중요하지 않은 기사거리인거야? 왜 나만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슬슬 억울했다.

그날 취재 갔던 기사들을 살펴보면 보도자료에 쓰여 있는 내빈이 불참했음에도 이름이 쓰여져 있는 건 기본이거니와, 긍정적이고 좋은 상황이 전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일주일동안 날아온 보도자료 통계를 내보니 광양시청에서 50여개, 광양제철소에서 7개, 광양경제청에서 2개, 광양교육지원청에서 6개, 여수광양항만공사에서 3개, 전남도청에서 10여개, 기타 10여개 등 모두 90여개에 달했다.

이곳저곳에서 이렇게 다들 열일 해주시는데, 현장에 도대체 왜가야 되나 싶었다. ‘기자하기 쉬운데? 그래, 이제 나도 저렇게 편하게 일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하루를 채 못갔다. 대표님께선 “지역신문인만큼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며 매일같이 나를 현장으로 보내셨다.

처음에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 상상 속 기자는 노트북을 챙겨들고 카페에서 커피 한 모금의 여유와 함께 업무 보는 현대여성 이미지였다.

망상이 따로 없었다. 여유는 무슨,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여기 올라갔다, 저기 내려갔다, 다각도로 찍어대는 통에 신발 밑창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지고, 진흙탕에 빠지거나, 비바람·흙 먼지를 뒤집어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제 시간에 집에 가는 일은 손에 꼽는다. 5일중 3일은 야근이 기본이다. 물론 절대 대표님이 일부러 시킨 야근은 아니다.

직업 특성상 마감 전까지 기사를 미리 작성 해놓아야 하기에, 자진야근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다. 자진야근을 하는 이유는 정신없이 취재에 집중하다보면 그날 기사가 다음날로 밀려 쌓이기 때문인데, 선배들은 그날그날 바로 써서 넘기면 된다고들 말하지만, 정말이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집에 가기위해 집중해서 글을 쓰니 잡념은 없어지더라. 그렇다. 겨우 찾은 장점이다.

기억에 남는 취재 에피소드

취재 중엔 별일을 다 겪는다. 그중 제일 생각나는 흑역사가 하나 있다. 지방선거 개표날, 무엇 때문인지 분주하게 뛰어가다 난데없이 트리플악셀을 시전하며 요란스럽게 넘어진 적이 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거기 있던 수백 명의 시민들 중 절반정도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잠깐 0.1초였지만 그들의 동정어린 눈빛을 확인하기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 참, 왜 넘어졌을까, 아프네, 하하하”라며 로봇 같은 대사를 쏟아냈다. ‘아무 말 대잔치’의 정의를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다.
아마 저 읊조림 때문에 더 불쌍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팔꿈치가 다 까지고, 무릎도 찢어졌는데 그 순간만큼은 고통을 모르는 인간으로 진화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넘어진 기억도 흐릿해질 쯤, 같은 장소에서 대표님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대표님은 기다렸다는듯 “너 그때 넘어졌던 곳, 거기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봐”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잊을 법도 한데, 아니 잊어줄 법도 한데, 기억저장 공간이 남들보다 뛰어나신 게 분명하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야외행사를 마친 후, 참석한 내빈들이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토라인을 잡는 중이었다. 구도가 제대로안 나오자 기자들은 점점 인도에서 도로로 한발 한발 뒷걸음질치며 자리를 잡았고, 지나가던 화물차들은 당연히 빵빵거리며 난리가 났다.

이내 차량들은 등 뒤 1cm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의 간격으로 무섭게 내달렸다. 식은땀이 줄줄 났다. 아마 죽음의 문턱에 발 한번 담갔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이 “기자가 다른 직업 군보다 수명이 짧은 건 알고 있느냐” 물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 그거요? 기자들 취재하다 도로에서 로드킬 당해서 빨리 죽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밑도 끝도 없긴 했다.

대표님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더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다시 차분히 설명해주셨다. 솔직히 뭐라고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대표님 말씀 내내 화물차, 트럭, 등 뒤 1cm, 죽음 생각뿐이었다.

식겁했던 건 이뿐만 아니다. 지난여름 태풍 ‘솔릭’이 왔을 때, 대표님께서 “태풍피해 취재가자”는 말씀과 함께 나를 차에 태우셨다. 차창 밖 흔들리는 나무 가지들을 보며 이미 겁을 먹을 대로 먹었다. 진월면 망덕부근에 도착하자 대표님은 차에서 내려 요동치는 섬진강 물결을 찍어오라고 하셨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했다. ‘오호 내 인생의 결말이 뭘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그렇구나. 섬진강 물고기 밥이었구나’ 결국 무서워 죽겠다고 울먹거리자 대표님은 “그러면 차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당당하게 내리셨다.

무슨 종이인형이 나부끼는 것 같았다. 내 걱정 해주실 때가 아닌 거 같았다. 그냥 내가 이순신 대교에서 사진 찍다 실족사해야 이 취재가 끝날까 싶었다. 행여나 EBS ‘극한직업’에서 출연제의가 오면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다.

작년 여름엔 더 최악이었다. 야외에서 긴 시간 대기하고 있다 보면 개미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진드기가 몸 곳곳에 자리 잡고는 거머리마냥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진드기가 몸에 붙었을 땐 “이건 부정할 수 없다. 난 지금 100% ‘쯔쯔가무시’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아파서 쉴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고, 날 물어준 진드기에게 고마웠다.
알아보니 쯔쯔가무시는 잠복기가 2주 정도이며, 감기로 착각할 수 있다기에 예민하게 내 몸상태를 주시했다.

몸이 뜨거웠다. 어지러운 것도 같고, “음, 느낌이 왔다. 쉬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결론은 그날이 40도가 넘는 폭염이라 그냥 쪄죽을 것 같은 거였다. 아, 쓸데없이 너무 건강하다.

그렇게 기자가 되다

무거운 카메라를 팔목에 걸쳐놓고 일하다 보니, 손목에 파랗게 멍이 들었다. 직업 멍(?)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대표님은 그러다 카메라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목에 걸고 다니라 하셨는데 거북목이 되기 싫어 팔에 걸친 탓에 생긴 멍이다.

어느 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회사 직원들과 밥을 먹다 문득 그 멍을 멍하니 바라보게 됐는데, 새삼스럽게도 훈장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갑자기 든 생각이라 조금 느닷없긴 했지만 ‘넌 현장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일하는 참된 기자구나’라는 표식이 새겨진 듯해 괜히 울컥했다.

꼼꼼한 대표님의 교육방침이 결국 이렇게 세뇌되어버린 걸까. 멍은 나를 다시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초심으로 돌아와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고, 기사에 열정을 쏟아 한자 한자 써내려 갔다. 그렇다고 뭐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다. 소소한 취재도,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는 것도, 야근도 모든 것이 그대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우리 박 대표님은 어서 빨리 취재가라고 기자한명 없는 현장으로 나를 보내신다.

‘역시는 역시군’이라고 속삭이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나 ‘똑똑’ 대표님 방을 두드린다.
이제는 익숙하고도 당연한 그 말을 외치며 문을 나선다.

“취재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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