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 가사로 읊다

▲ 백숙아 문학박사

눈썹달과 제자들을 유난히도 좋아했고
아내와 담배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싱겁고 촌스러운 남도 남자 송수권

주옥같은 그의 시풍 내 영혼을 사로잡아
광주여대 강당으로 찾아갔던 낯선 만남
어눌한 강의로 내 환상 무너뜨려
그의 시집 책꽂이 깊숙이 꽂아두고서
한동안 시 한 줄 쓰지 못해 방황할 때
남도 시인 순천 온다는 소식 듣고 갈등하다
순천대학교 문창과 강의실에서 재회했다

반나절은 공부하고 반나절은 갈대밭으로
초저녁 선술집에 가면 문 닫을 때까지 시 평하며
초롱초롱 반짝이던 문하생들 눈망울

시작이 반이라더니 나이 먹은 어느 제자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집을 출판하니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막걸리 사발 돌리며
담배 연기로 소리 없이 웃음을 태웠다

시 공부한 지 삼 년쯤 사제 간의 시화전
어설픈 제자 시화 연구실에 걸자기에
벌거벗고 길에 나선 기분일 것 같아서
한사코 거절하니 담배 태우며 삐진 듯하여
반추상 작품을 대신하여 걸어 주니
시상 절로 떠오른다며 촌스러운 미소로 화답

무더위가 지나고 시원한 바람 불어오던 날
뜬금없이 바바리 깃 세우고 석양 보러 가잔다
천방지축 제자들과 한걸음에 찾은 변산반도 방파제
반쯤 익어 여물지 못한 제자들을 앉혀놓고
발갛게 타서 죽어가는 해를 보며 남긴 말
‘한 단계만 넘어서면 고지(高地)가 보이는 걸’
그 밤이 새도록 술 마시고 노래하며
제자들은 시인 흉내 내며 지치지도 않았다

어느 봄날 담배 연기 가득한 연구실에서
초가삼간도 좋으니 섬진강 가에 집 하나 봐주란다
남편 친구 김종철 늙은 총각 동분서주
섬진강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은 집을 찾아

어느 날은 청소하고 어떤 날은 도배하고
어느 날은 밭 갈고 어떤 날은 차 마시고
어떤 날은 아내 아파 한숨 쉬며 시 쓰고
어떤 날은 원고 청탁 귀찮다며 글 쓰고
어떤 날은 남도 풍류 책에 담아 출판했던
시인이 귀천하기까지 시 산고 겪던 어초장

달 밝은 밤엔 섬진강 모래밭에 나가서
은어랑 참게랑 친구 되어 뒹굴고
구름 걷힌 맑은 하늘에 산들바람 불어올 때면
낚싯대 던져놓고 섬진강이랑 속삭였단다
어야 섬진강아 지리산이 발 담그러 내려왔다

살아생전 당신 이름 문학상이 제정되니
시상식에 은사님 따라 찾아가서 반겼더니

거무스레한 피부에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너 왔냐며 알지 못할 미소 지으며 내밀던 손
한동안 내 가슴에 깊이 남아서 아렸다

시 공부가 농후하게 익어가던 어느 봄날
하던 공부 마치고 시 쓰겠다 언약하고
십 수 년 만에 맘먹고 시 공부하러 나섰는데
뜬금없이 잔인한 이별이 그 꿈을 낚아채고
철없는 제자 늦어버린 꿈 얼룩진 아쉬움

섬진강물에 침몰하여 허우적대고 방황하니
귀천한 시인이 산 그림자에 詩心 실어 주었는지
꼭두새벽 시 쓴다며 전기세만 늘어가고
몸살 난 섬진강물이 밤새도록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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