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광양여자고등학교 1학년

▲ 김민서 (광양여자고등학교 1학년)

사회라는 여러 집단의 집합체에서 개인의 역할과 의미는 미미하다. 평범한 사람의 가치관과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삶에 대한 의미는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으며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기에 개인은 행동에 조심과 신중을 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여러 사람의 주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일체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가든 스스로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개인을 대변하는 것은 곧 사회이며 앞 다투어 각자의 이익만을 지향하게 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특히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각자가 추구하는 그 무엇이 옳은 삶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가치와 자세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채만식의 ‘미스터 방’에 나오는 방삼복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독립이 되었어도 자신은 여전히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주권을 찾은 국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미군에게 통역사가 필요하단 것을 알게 되면서 S소위에게 접근해 엉터리 영어 실력으로 돈을 벌게 되고 권력까지 휘두른다. 일제 강점기 때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던 백주사는 해방 후 지역 주민들의 원망을 받으며 모든 재산을 빼앗긴 상태였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백주사가 예전 같으면 대화상대로도 쳐주지 않았던 방삼복을 만나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말하며 부활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허세가 심했던 방삼복은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며 흔쾌히 수락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하던 버릇처럼 물 양치를 하다가 양칫물을 S소위 얼굴에 뿌려버리고 그에게 턱을 맞으며 방삼복의 부귀는 사라진다.

해방을 하면서 몰락한 백주사와 약삭빠른 기회주의로 권세를 얻게 된 방삼복의 상황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백주사는 이기주의자로 일제하의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모습을 보여준다. 방삼복은 해방 전후와 관계없이 빈곤한 삶을 꾸려가는 서민으로 오히려 해방으로 기뻐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소란스럽고 시끄럽다고만 여기던 인물이다. 국가의 앞날과 미래에 애착은커녕 당장 먹고 살길이 급급한 방삼복을 비롯한 서민들은 독립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 속 사람들은 그들의 목숨을 당연한 듯 포기해 버린다. 그것은 비극임에 틀림없다. 서로간의 신뢰는 사라진 채 속고 속이고 있다. 필요와 목적에 의해 사람을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확고한 목적과 신념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 결말이 죽음일지라도 비극이 아니다. 행복한 죽음이다. 당장 눈앞의 승리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머지않을 미래를 위한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역사다.’는 조선의 혁명가 김산과 미국의 여기자 님 웨일스의 공저 ‘아리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국가에서, 사회에서 개인의 힘이 미미할지라도 그들의 신념과 처신의 중요성을 김산과 님 웨일스는 강조하고 있다. 그들의 행위가 성공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경 받아 마땅하며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이다. 개인의 이익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생각엔 동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삶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늘 같은 자리에서 머물며 여러 사람들의 갈등과 다툼으로 불신만 커져갈 것이다. 앞으로 우리들은 더 복잡한 사회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의견 차이는 당연하지만 이기·기회주의적 면모를 앞세운 것이 다툼의 원인이라면 국민들과 국가에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사회의 이익은 곧 집단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은 곧 개인의 이익을 가져올 거란 긍정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