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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숨결이 숨 쉬는 오사카 성(大阪城)김보예 역사칼럼-오사카 여행 속 역사의 발자취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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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1  0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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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예(쓰쿠바대학교 교육학 박사과정수료)

지난 편에 1919년의 3.19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덴노지 공원(天王寺公園)을 소개했다. 이번 편에는 오사카에 남아 있는 1930년대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사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사카 성’일 것이다. ‘오사카 성’은 그야말로 오사카의 상징 그 자체이다. 오사카 성은 일본을 전국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유명하며, 성(천수각) 내부는 그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도요토미는 일본통일 이후, 대륙 진출(조선 침략)을 꿈꾸었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활약이 펼쳐진다.

오사카 성은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한 곳이기도 하다. 적의 장군을 모시고 있는 성이니. 하지만, 오사카성 또한 역사가 깃든 곳이니, 생각하기 따라서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사카성을 둘러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을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그 오랜 역사부터 민초(民草)가 지켜 온 나라이지 않은가. 오사카 성을 둘러 볼 때, 스스로 일어나 외세 침략에 맞선 조선의 의로운 병사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천수각을 구경하고 나올 때쯤, 당신의 손에 쥐어진 대한민국의 여권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 오사카 성(천수각)-사진 제갈대식(사진가/디자인이안 대표)

서론이 다소 길어졌는데, 천수각 바로 앞에는 근대 양식으로 지어진 ‘미라이자 오사카성(ミライザ大阪城)’이라는 건물이 있다. 1931년 3월 22일에 육군 제4사령부 청사(陸軍第四師団司令部庁舍)로 지어진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군에게 접수(接受)되었으나, 종전 후 다시 일본으로 반환되어 한동안 오사카 경찰서 본부로 사용되었다.

그후, 1960년부터는 오사카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가, 오사카 시립 박물관의 새 건물이 건립되면서 2002년부터는 잠시 폐관되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내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레스토랑, 전시관,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수각 바로 앞에 있기에 다들 한 번쯤 눈여겨보는 건물이긴 하나, 단순 쇼핑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오사카 성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천수각에 티켓팅하러 가는 길에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되돌아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오사카성에는 ‘미라이자 오사카 성(ミライザ大阪城)’의 건물과 같은 근대 건물이 하나있는데, 이곳은 꼭 들려 주길 바란다. 바로, 육군 위수형무소이다. 위수형무소는 도시락폭탄의 윤봉길 의사가 순직 직전 마지막 한 달을 보낸 곳이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26일 한인 애국단에 입단하여,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계획한다.

▲ 미라이자 오사카성-사진 제갈대식(사진가/디자인이안 대표)

윤봉길 의사는 입단 후 3일 만에 29일 일왕의 생일날,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게 된다. 윤봉길 의사는 저격용 물통 폭탄 1개와 자결용 도시락 폭탄 1개를 감추고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식장에 입장하였다. 식이 진행 중일 때, 그는 물통 폭탄을 던졌으며,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와 거류민 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리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重光癸) 등이 중상을 입었다. 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틈을 타서 자결하고자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11월 20일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한 달간 수감되었으며, 12월 19일 가나자와 9사단 구금소에 13시간 가량 머문 뒤, 가나자와 육군 작업장에서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셨다.

현재 위소형무소는 ‘오사카성 공원 성내 힐소(大阪城公園城内詰所)’로 사용되고 있다.
힐소(詰所, つめしょ)란 대기 장소를 뜻하며, 오사카성의 힐소의 경우 관계자 외 출입금지임을 보아, 근무자가 잠시 쉬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듯했다. ‘오사카성 공원 성내 힐소(舊육군 위수형무소)’는 천수각에서 도보 5분 내에 위치해 있으며, 서편의 동정원(西の丸庭園) 입구 바로 앞에 있다.

▲ (구)육군 위수형무소-사진 제갈대식(사진가/디자인이안 대표)

위수형무소에 앞에는 아주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사진작가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 나무는 100년쯤 되었을 것 같네. 윤봉길 의사를 뵈었겠지. 윤봉길 의사를 알현한 저 나무와 함께 위소형무소를 남겨 줄게.” 나무가 윤봉길 의사를 만난 날은 11월 20일이니, 나무는 붉은 단풍으로 한껏 단장하고 그를 맞이했을 것이다. 나무와 그가 만난 날의 오사카의 하늘은 가을이 만연했을 것이고, 눈부시도록 청량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마치 신의 장난처럼 찬란하고도 쓸쓸하게.

작가님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형무소의 주위를 살펴보았다. 형무소 앞 잔디밭에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누가 윤봉일 의사의 순국을 추도하기 위해 놓고 간 것일까. 사진 촬영은 한 시간가량 진행 되었다. 하지만, 나는 위소형무소에 눈길을 주는 한국인을 만나지 못하였다. 천수각 앞에는 그리 많던 한국인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신의 장난처럼 찬란하고도 쓸쓸한 시간이었다.

※부탁의 말
헌화와 같은 추도 흔적을 남기는 것보다 조용히 1분간 묵념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도의 흔적을 남기실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이 마련되기까지 기다려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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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본 오사카의 랜드마크 "오사카성", 윤봉길의사가 한 달간 수감되었던 위수형무소. 조국독립을위해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신 윤봉길의사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작가의 감성적인 필력을 극찬하고 싶습니다. 신의 장난처럼 찬란하고도 쓸쓸한 시간속 역사의 아픔을 군더더기없이 잘 표현해주어 가슴절절히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2019-03-12 01: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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