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나는 한때 각종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를 대회에 참석한 나머지 선수들이 샴페인을 터트리고, 포옹도 하면서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고 스포츠맨십을 의식한 보여주기인지, 진심에서 우러난 축하인지를 의문해 본적이 있다. 특히 어린여자 선수들은 성격이 예민하고 경쟁심이 커 우승을 놓친 아쉬움에 마음이 더 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행복에 관한 글을 열댓 번 쓰다 보니 그 축하가 진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본 사람, 우승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앞선 사람이 운이나 그날의 컨디션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자기관리와 연습에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의지와 몰입은 희열과 함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축복도 준다. 좌절은 더 높이 뛰어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며 오직 계속되는 훈련만이 시련과 서운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또 한 번 자각하는 것이다.

우승 선수보다 우승한 선수의 열정과 노고에 존경과 경의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아쉬움에 매달리기보다 노력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스스로 미흡했던 부분을 성찰함으로써 다음 대회를 기약하는 것이다. 수차례의 준우승에 머무르던 선수가 마침내 우승하였을 때 느끼는 희열은 그래서 더 크게 느껴지고 보다 소중한 것이 된다.

때로 행복은 미로 찾기처럼, 퍼즐 맞추기처럼, 레고 쌓기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그 무엇을 찾고, 만들고 부수어보며 형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의 소소함 속에서 소중한 그 무었을 찾고 스스로 공감하고 익숙해지고 감격해 하는 것이리라.

나는 오늘 어릴 적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낌질 하듯 내가 요즘 행복을 느끼는 경우 몇 가지를 불러내어 확인하며 행복에 젖어 볼까 한다.

먼저 책이나 신문 등에서 그 사람만의 독창적 이고 창조적인 언어를 찾아 읽을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어떤 풍광과 사연이, 어떤 영감이나 천재성이, 어떤 상상력이나 직관이, 사금을 채질하듯 몸 공을 들였는지 경륜의 힘을 빌린 연금술인지, 그도 아니면 얼마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기에 산사람 몸에서 나오는 사리(舍利) 같은 언어를 토해낼 수 있었을까를 상상하며 존경을 보내며 감격하는 것이다.

호연지기 뒤에 감추어진 좌절과 실패, 단어 속에 실려 있는 희망과 믿음과 신념과 겸손까지도 찾아내려 노력하며 하루를 즐겁게 뒤척이며 보낸다.

날씨 추운 날 나는 망설임을 이겨내고 서산에 오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중 가장 친숙하고 보람을 느껴보는 일상이다. 귀와 코와 손끝의 시려 옴을 참고 20여 분을 오르면 땀이 돌고, 저 아래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초남 앞바다가 여유롭게 펼쳐진다. 조금 멀리보면 고흥 팔영산과 마로산성, 억불봉과 백운산 정상까지 풍광이 이어질 때도 있다.

미국 우주인 스콧 켈리는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우주정거장에서 1년을 체류한 뒤 지구 자연 과의 상면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풀냄새는 기가 막히고 바람 촉감은 황홀하며 비는 차라리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 걷는 바로 이 길이 화려한 꽃길도 레드카펫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감격어린 소망의 길도 될 수 있음을 한 문장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며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제 하얀 눈꽃도 보고 머지않아 봄이 오면 이길에는 나도 좀 봐 달라고 애원하는 앙증맞은 별꽃과 제비꽃도 피고, 화려한 진달래와 찔레꽃 등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에 피어날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애심과 땀이 주는 공덕(功德)은 나에게 또 한 해 감기를 이기는 힘을 줄 것이며 엉덩이가 의자 위에서 버티어 내는 인내를 선사할 것이다. ‘칠순이 넘어 산에 오르는 것은 무리다’ 라고들 한다.

그러나 싸늘한 바람을 쏘이고 집에 돌아 와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할 때의 기분을 어떻게 습관 되지 않은 사람이 알겠는가.

‘불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여러 감각 기능 중에서 미각이나 후각이나 청각, 촉각은 뜨겁다고 기겁을 하는 불길에 오직 시각만은 인간이 소중히 대하고 어여삐 여기는 ‘꽃’자를 붙여 주었다.

그 찬란함에서 ‘불꽃같은 사랑’이라 노래로 표현까지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뜨거움보다 따스함이 느껴진다고 충고도 한다, 이렇게 한 몸뚱이에서도 상반된 느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경험과 폭넓은 사유는 행복은 생각 나름이며 폭을 잘 쳐 보라고도 한다. 기쁨과 슬픔이 눈물로 연결됨을 안다면 불행 저쪽 끝에 행복은 없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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