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 임광재

은행 창구에서 순번을 기다리는데 앞에서 먼저 일을 보는 사람의 허리춤에 매달린 열쇠고리에 여나무개의 열쇠가 매달려 흔들거린다. 저 사람은 무슨 열쇠가 저렇게도 많을까.

저토록 많은 열쇠를 가지고 다녀야할 정도로 간직해야할 소중한 재물이 많든지 아니면 자기 물건을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거나 열쇠관리책임자일 것이다.

열쇠란 잠그어 놓은 자물쇠를 푸는 물건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나 비밀스런 영역을 함축시켜 놓은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여 생긴 불신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거짓 없는 천국이나 모두가 서로를 신뢰할 수있는 이상사회에서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될 터이다. 권력이나 재물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그 사람의 힘을 말하기도 한다.

열쇠를 가져서는 안 될 사람이 가지게 되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나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전에 수사 일선에서 수사를 하다보면 자물쇠의 개폐상황, 열쇠의 개수, 관리자나 소지자의 여부가 문제가 될 경우가 많고, 미궁을 헤매던 사건의 열쇠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 하다가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할 때의 쾌감은 어디 에도 비할 바가 없었다.

인근 경찰서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떤 가장이 아파트 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밤늦게 귀가하자 그의 아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 계단에서 날을 지새워야했다. 아침이 되어 아이들이 학교를 가려고 문을 열고 나오자 그 틈에 집에 들어가 홧김에 아내를 때려 가정폭력 피의자로 체포되어 온 일이 있었다.

그에게 어째서 가장이 집 열쇠 하나도 안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못가지고 다니는데 어쩔 것이냐며 뒤통수만 긁적거리는 것이었다. 가정에서도 실권의 열쇠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열쇠도 천차만별이다. 천국의 계단으로 가는 열쇠, 신곡을 쓴 시인 단테가 연인 베아트리체를 위하여 피렌체의 다리위에 자물쇠를 채우고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뜻으로 아르노강에 던졌다 는 사랑의 열쇠, 그것을 모방하여 서울 남산타워 광장 난간에 매달린 수많은 자물쇠들의 열쇠, 자유를 구속하는 은팔찌(수갑)의 열쇠, 십자군 전쟁때 기사들이 전장에 나서며 아내에게 채웠다던 정조대라는 자물쇠도 있었다던가.

그걸 생각하니 우스개가 하나 생각난다. 기사한 사람이 집에 예쁜 아내를 남겨두고 나서면서 가장 신뢰하는 아우에게 아내의 정조대를 풀 수있는 열쇠를 맡겨 놓고 떠났더란다.

그런데 한나 절도 안 되어 그 아우가 허겁지겁 쫓아와 하는 말이 “형님이 맡기고 간 열쇠가 형수에게 맞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더란다.

크게는 북미핵협상의 열쇠, 인구 절벽의 해소를 위한 열쇠, 만성적인 불경기와 청년실업의 해결을 위한 열쇠, 골이 깊어져가는 양극화의 해소를 위한 열쇠,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없는 것인가.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열쇠의 크기나 기능, 성질도 많이 달라졌다. 농경산업사회에서는 농산 물을 저장하는 곳간의 자물쇠가 컸던 만큼 열쇠도 큼직했었다. 며느리에게 쉽게 넘겨주지 않았던 시어머니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이빨 몇 개짜리 커다란 열쇠뭉치를 상상해보자.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유형의 열쇠가 무형의 열쇠로 대체되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각종 홈페 이지나 포털 사이트, 금융기관 계좌 등의 패스워드가 몇 가지인가를 세어보라. 우리가 관리하는 열쇠의 숫자도 더욱 많아졌고 모름지기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이즈음은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의 듣보잡 열쇠도 실용단계에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여도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짝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볼 수가 있어서 좋을 것이고 선거를 치러야하는 정치인 같은 이들은 유권자들의 지지율을 마음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며 상인들은 소비자의 마음을, 특히 수사관은 굳게 닫힌 범죄자의 마음을 열어볼 수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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