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군경이 불법체포·구금, 범죄증명 없이 사형”

전남도의회 여순특위 즉각 환영 “진실 반드시 규명돼야”

1948년 여순항쟁 당시 국권문란죄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국회에 계류 중인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 김명수)는 지난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당한 장 모 씨 등 3명에 대한 재심 결정 재항고심에서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개시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순천 시민이던 장 씨 등 3명은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체포돼 곧바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집행을 당했다. 현재까지 당시 수사 절차나 증거, 판결문 등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재심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당시 여수와 순천을 탈환한 국군과 경찰은 민간인 438명에게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불법체포한 뒤 구체적인 범죄증명 없이 곧바로 사형을 선고·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 씨 유족 등은 지난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명예회복에 들어갔다.

1심은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보면 장 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2심도 “장 씨 등이 불법으로 체포·구속됐다”며 1심의 결정이 문제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역시 핵심재심 사유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적법한지 여부를 따졌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9명)은 재심사유를 인정하고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모두 정당하므로 재항고는 이유 없다고 재항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들 피고인들(민간인 희생자들)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반란가담, 협조혐의로 체포, 감금됐다가 내란죄,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이들을 체포, 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체포, 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 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고 피고인들의 연행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재심결정은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에 대해 재심개시결정을 확정한 최초 사례다.

다만 조희대 대법관과 이동원 대법관은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했고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도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증명 돼야 하는데 이 사건은 위와 같은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판기 환송의견을 냈다.

박상옥 대법관과 이기택 대법관 이기택도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재심은 가능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이 같은 대법원의 결정에 전남도의회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남도의회는 21일 대법원 재심결정 뒤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위원회 이름으로 대법원의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청구대상’ 검찰 재항고에 대한 기각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 “국회 계류 중인 특별법 제정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남도의회 여순특위 강정희 위원장은 “국가는 법치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3심 제도마저 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며 “이들은 반민주적 불법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고 때문에 국가의 무법과 위법 그리고 불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반드시 그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구성된 전라남도의회 여순특위는 그동안 여순사건과 관련한 민간인 희생자들은 1948년 11월 14일 형법 제77조(내란), 포고령 제2호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이 집행됐으나 이들에게 적용된 계엄법은 정작 사형이 집행된 1년 후인 1949년 11월 24일에야 제정됐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 왔다.

또 이런 사실에 근거해 그동안 지역사회와 유가족측은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지구 고등군법회의가 민간인 희생자들에게 적용한 법조문은 ‘무법’이며 그 뒤 이들에게 집행된 사형은 ‘국가에 의한 억울한 희생’임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각계에 전달한 바 있다.

한편 장 씨 등에 대한 재심 재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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