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백운암 사적기(연재)-상백운암 주지 정륜 스님

▲ 도선국사
광양의 진산 백운산은 도선국사가 산문을 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느 골짜기를 가더라도 도선국사의 사연이 서려있다.
상백운암은 천년이 넘는 암자인데 도선국사가 처음으로 초암을 지어 수행정진한 곳이다.

도선국사는 신라말의 승려로 영암 출신이며 속성은 김 씨이다.
어머니는 최 씨이니 영암의 성기산 벽촌에서 827년(흥덕왕 2년)에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846년(문성왕 8년)에 곡성 태안사의 혜철국사(慧徹國師)에게서 심인(心印)을 받았다.

도선이 구례 오산(鰲山) 사성암(四聖庵)에서 수행정진 중 지리산 이인에게 음양풍수를 사도리에서 지도받았다.

옛날부터 구례 오산 사성암은 백운산 머릿자리라고 알려져 왔고, 최근 입적한 청화 큰스님은 오산 사성암에서 두 분의 도인이 더 난다고 하였다.

국사가 역사적으로 더 유명해진 것은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년)에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고려의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국사가 백운산 상백운암 터를 보시고 가사 장삼을 입고 7일을 춤추었다고 한다.

백운산 몸통 복장(腹藏) 삼존불 봉황의 둥지터인 상백운암은 봉황의 기운이 서려 대도를 깨치고 토금 돼지의 기운이 있어 큰 대작불사를 한다고 하였다.

국사는 상백운암에서 3년의 보임을 마치시고 37세 되던 해에 광양 옥룡사에 주석하시면서 입적할 때까지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당시 제자의 수가 수백명이란 점에서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사는 옥룡사에 머문지 35년이 되는 때인 898년(효공왕 2년)에 세수 72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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