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 효천고등학교 1학년

▲ 이종진 효천고 1학년

‘휴거’와 ‘빌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 휴거는 주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거지에 빗대어 비하하는 말이고, 빌거는 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거지에 빗대어 비하하는 말이다.

신학기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접한 말은 산뜻한 설렘을 공허함으로 물들였다. 좋은 것만 보고 자라도 아쉬울 시기에 어른 사회의 잘못된 의식이 아이들에게 전이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암울하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인본주의를 넘어 물질 만능 사회로 진입한지 꽤 되었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 이론으로 확립된 지금 아파트, 자동차, 옷과 같은 겉치레가 삶의 질과 행복의 정도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잣대로 굳혀졌다.

또한 내가 ‘나’임을 자각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소유 했는가’로 타인에게 대변되어질 때로 개개인의 고유한 개성은 디지털 시대의 케케묵은 종이이론으로 묵살당한 채 천민자본주의에 의한 척도가 보편적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산업화의 반동으로 시작된 것처럼 느껴지는 물질 만능주의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둥지를 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이 우리의 삶을 짓밟던 1930년대, 근대 조선에는 투기 열풍과 금빛 광풍이 불어 닥쳤다. 농사짓던 소작농들부터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당대 지식인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내팽개치고 금을 찾아 헤맸다. 1930년에는 284개에 그쳤던 금광의 숫자가 1930년에는 2735개로 늘어난 것을 고려했을 때, 당시의 노다지 열풍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골든 러쉬는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더 많은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최악의 상태로 내몰렸다. 김유정의 단편 소설 ‘금 따는 콩밭’의 주인공 영식이도 수재의 꾐에 빠져 일확천금으로 자신의 가난을 극복해보려 했으나 결국 멀쩡한 콩밭만 망쳐버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람들은 늘상 부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만큼 부와 행복은 밀접한 관계가 아니다.

행복경제연구소가 2006년 7월 통계청이 시행한 사회통계조사 1만 8095명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1.1%를 차지하는 최고 소득 계층의 행복지수는 3.37로 전체 9개 계층 가운데 4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소득이 가장 많은 9계층의 사람들에게 ‘계층의식’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중하나 중상에 못 미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역설적인 결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과 이로 인한 지나친 경쟁의식이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부에 대한 욕망을 경계하고 과한 욕망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들부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까지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삶이 행복하길 원했다. 물질적 궁핍에 시달렸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생존함으로써 행복을 느꼈고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질적 풍요가 행복이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주관적 만족감, 오늘날에는 ‘소확행’, ‘욜로’ 등이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행복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수없이 바뀌어 왔다.

현재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는 ‘나눔’이다. 하지만 커다란 국가적 시련을 연달아 겪었던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배고픔에 굶주려 있었다. 정신보다 신체에 잠재 되어있었던 ‘나눔의 DNA’는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의 궁핍 속에서 점점 메말라 갔고 약육강식에서 생존하기 위한 동물적인 ‘이기적 DNA’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모여 먹었던 ‘잔치국수’, 서로의 일을 돕기 위해 만들었던 친목 모임 ‘계’, 가족만큼 가깝고 친밀한 이웃을 의미하는 ‘이웃사촌’ 같은 단어들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삼아 경계한 사회로 변한 지금 우리 민족의 정서가 ‘정’이었는지 미심쩍기만 하다.

캐나다 밴쿠버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던은 나눔과 만족감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마음이 넓고 남을 잘 돕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탐욕은 더 큰 탐욕을 부르기 마련이고 불행로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휴거와 빌거란 단어를 탄생시킨 의식은 부질없는 가치이며 지향하고 싶은 곳이 행복로라면 잠재의식에서부터 나눔이 필연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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