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 임광재

나는 빨간불이 더 좋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한때는 공직에 있으면서 대공업무를 맡기도 했었고 아직도 사회가 색깔론으로 들썩일 때가 종종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던 전체주의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갈 얘기다.

사실 나는 빨간색을 체질적으로 싫어했었다. 아니, 어쩌면 학습을 통하여 체질화되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배우고 자라온 세대에 형성된 의식의 밑바탕에 빨간색은 빨갱이로 대변되는 북한의 공산주의를 연상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중국의 오성홍기, 러시아의 붉은 군대, 드라큘라의 송곳니와 턱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 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색깔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기의 태극무늬 속의 빨간색이 우주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의 어린 시절에는 우리민족은 분단을 숙명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태극기 속에는 위쪽에는 북한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며 아래쪽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파란색이라는 얼토당토 아닌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빨간색은 정지, 금지를 뜻하는 표시, 소화기, 경보기, 긴급정지 등에 쓰이는 안전색채이고 자극이 강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정열, 흥분, 적극성 등의 작용을 하는 선동적인 색깔로써 필요한 집단이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빨간색이 인간의 시각세포에 가장 잘 보이는 색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심지어 원조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정당에서도 그들을 상징하는 색깔을 빨간색 일색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즈음 광양읍과 중마동 구간을 운전하여 다닐 때 많은 신호등을 지나치게 되는데 현재다리 오르막길, 영세공원 앞 삼거리, 컨부두 사거리 등에 이르러 아찔한 순간들을 종종 겪으면서 신호대기 중의 빨간색 신호등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불 신호등이 안정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르막길에서 파란색 신호가 켜져 있는 것을 바라보고 신호를 신속히 통과할 생각으로 쏜살같이 탄력을 받아 올라갔다가 밀려 있는 앞서 진행 중인 앞차의 꽁무니를 들이받을 뻔하였다.

그리고 내 뒤를 바짝 뒤따라 오던 차에 받히기도 하고 받힐 뻔 한 후로는 파란색 신호등이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파란불 신호등 보다는 빨간불 신호등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빨간불 신호를 받고 차분하게 기다리다보면 나중에는 반드시 파란색의 직진 신호 또는 직진과 좌회전 동시신호가 오게 되고 바뀐 신호에 따라 마음 느긋하게 진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지스러운 얘기일지 몰라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건강할 때 우리의 건강을 잘 돌보지 않고 몸을 함부로 쓸 때가 많다. 젊고 건강하다하여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고 혹사시켜 불치의 병에 이른 경우를 많이 보아왔고 병이라는 빨간불 신호가 오는 것을 보고나서야 자기의 건강을 챙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앞길에 파란불이 켜져 있다고 막무가내로 달려갈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빨간불이 켜져 있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다. 빨간 불 뒤에 참고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파란불이 돌아오듯이 오히려 절망의 뒤편에서는 희망이라는 파란 불이 오게 마련이므로.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