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무슨 가난, 무슨 설움 해도 얼굴가난처럼 서러운 건 없을 것이오.” 연세든 한 여자 분의 말에 생각이 머문다. 먼 옛날 인간은 수렵과 채집의 이동생활에서 정착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먹이를 구하는데 편리한 동물적 얼굴형태에서 호감과 소통형태로 진화하면서 외모가 크게 보기 좋아지고 그 중요성이 커져왔다 한다.

특히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서로 껴안고 마주 보며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무엇보다 중요한 욕망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 미국 전 대통령의 얼굴에 대한 충고와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져라.”는 말과 함께 재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반

대당의 한 의원이 “당신은 말만 그럴듯하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이중 인격자입니다.”고 항의하자, 링컨 대통령은 웃음 띤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답변했다.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달고 다니겠소.” 링컨 대통령이 이야기한 나이 들어 책임져야 할 그 얼굴은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예쁘고 잘생긴 얼굴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다.

나는 나이 값의 기준을 먼저 얼굴의 변화에서 찾고자 한다. 누군가는 “얼굴은 영혼의 반영이며 마음의 초상화다.” 말하고, “당신의 DNA는 매순간 삶과 타자를 맞는 당신의 얼굴을 빅 데이터로 평균내고 있다.”고도 한다. 그 사람의 얼굴은 그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자 한사람의 역사라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 나아짐’의 평균은 그 나라의 행복과 미래를 가름 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말도 된다. 세상에서 ‘곱게 늙어가는 얼굴’보다 보기 좋은 모습은 흔치않을 것이다. 곱게 늙어가는 모습은 꾸준한 자기관리와 욕심내지 않는 성실한 삶, 선하고 정직한 마음가짐과 공손하고 바른 자세,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자존감과 여유, 그도 아니면 사랑 으로 충만한 타고난 기질이나 낙천적 천성의 조화와 쌓여짐이 아닐까?

나는 최근 우리사회가 차별과 차이로, 경청보다는 주장이, 이해보다는 비난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며 증오와 혐오의 막말의 내용보다 그런 말을 쏟아 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진실보다는 법리를 이야기하며 거짓말을 태연이하는 꾀스런 얼굴, 그 많은 권한을 휘두르고도 나는 윗물이니 아랫물보다 대접해주라는 몰염치한 얼굴, 편 가르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먹히는 감정을 자극하는 막말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비겁한 얼굴을 보며 그 사람의 말과 얼굴의 변화를 비교해본다. 선입감 때문일까? 말의 내용과 그 말을 한사람의 얼굴이 닮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들 또한 나이가 들면 내력 없이 서운한 마음이생기고 짜증이 날 때 가 많다. 깊이 생각하거나 충분이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를 하고 싶고, 한번 한말에 자존심을 앞세워 고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 한다. 기억력이 나빠짐을 깜박하고 죽어라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그래서 평온한 표정을 갖는다는 것, 곱게 늙어 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내 얼굴이 실물보다 잘 나오는 사진을 바라지는 않지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런 사진을 가지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느지막 대학생활 추억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인근지역에까지 알아준 다는 사진작가는 내 독사진을 찍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셔터를 눌러대다, 마침내 나에게 말했다. “어르신은 아무생각 말고 그저 웃 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한번 지어 보십시오.” 그 충고로 그럭저럭 다음차례의 촬영을 기다리는 학생의 지루함은 끝날 수 있었다.

그날이후 나는 그저 웃고 살자 마음먹었고, 집사람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가벼운 내 몸이 6kg 빠졌다, 회복 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웃음은 내생 활의 철칙으로 자리 잡았다. 면도하면서도 거울 보며 웃고, 산책길 푸른 하늘 보고 소처럼 웃기도 한다.

그런 뒤로 친구들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 점차 줄어들고, 난생처음으로 얼굴에 활력이 넘쳐 보인다는 말도 들어봤다.

북미 수우족 인디언들은 평소 이런 기도를 바친다고 한다. “저희에게 복이나 재산보다 내 몸의 기능을 키워주시고 지혜의 힘을 주소서. 가장 큰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어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 시켜 주소서. 그래서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 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이 기도에 딱 한가지 만 염치없이 더 보태고 싶다.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내 얼굴에서 평화로운 웃음 거두지 마시옵고, 어제보다 내일, 나아진 얼굴을 소망하는 나의 노력을 어여삐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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