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자국민 학살역사 되풀이 없도록 경종”

재판부“ 명예 회복 위한 법원의 책무를 다할 것”

“오늘 재심은 제 아버지의 재심뿐 아니라 해방 후 46년 대구 10월항쟁과 48년 제주 4.3민중항쟁, 여순민중항쟁, 60년 4.19혁명, 80년 5.18민중항쟁 등 무차별 집단학살의 재심으로 국가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빨갱이로, 연좌제로 고통당한 모든 유가족들의 재심이 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여순항쟁 재심개시결정에 따라 지난달 29일 첫 재판이 진행되기 전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열린 재심재판 기자회견에서 여순항쟁 민간인 희생자의 유가족이자 재심청구 당사자 장경자 씨의 말이다.

여순항쟁 당시 순천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장 씨의 아버지 장환봉 씨는 1948년 10월 20일 여수주둔 14연대가 철도운동장에 진군하자 순천역장을 포함해 전직원 4~5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돼 토벌군의 순천탈환 이후인 1948년 11월 민간인 100여 명과 함께 순천시 생목동, 수박동 야산에서 총살당했다. 토벌군은 이들 민간인을 학살한 이후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우고 흔적을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이는 국가권력의 추악한 범죄행위였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며 “행방된 후 국가는 외세를 등에 업고 무차별로 민초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도 아직도 제대로 반성도, 사죄도, 처벌도 없다”며 “여순특별법을 하루 속히 만들어 미래를 위해, 재발방지를 위해 반드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기강을 바로 세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여순사건 유족들과 재심대책위원회는 물론 여수와 순천, 광양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을 사법부에 요구하고 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법원에서 민간인을 국법회의에서 처형한 것은 불법적이며 위법적 행위였다고 판시하고 재심 개시를 결정하는데 무려 7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검찰은 기존에 그랬듯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여순사건의 진상이)유족의 주장만으로 이뤄졌고 불법적 연행 구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일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치주의를 수호할 최후의 보루”라며 “불법적인 일이고 잘못된 국가폭력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했던 지난 71년 전 국가권력의 학살에 대해 준엄한 심판으로 국가의 품격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다시는 자국민이 학살되는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은 국민과 유족들 앞에 사죄하고 대통령과 국화는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할 것”도 촉구했다.

이 같은 유족과 시민사회단체의 촉구에 대해 여순사건 첫 재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9일 오후 여순사건 재심의 첫 재판을 시작하면서 “여순사건은 사법 작용을 가장한 집단 학살이었다”며 “명예 회복을 위한 법원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원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희생자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 두렵다”며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대법원이 내린 재심 개시결정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당시 군사재판 공소장이 없어 국방부, 군과 함께 전담팀을 꾸려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6월까지 충분한 준비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향후 재심의 진행 방식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입장을 확인했다. 다음 재심 재판은 6월 24일 열린다.

여순사건은 지난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 중이던 14연대가 제주 4.3항쟁 민간인 학살파병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으로 여수와 순천, 광양 등 전남동부전역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군·경이 순천지역에서만 민간인 438명 내란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사형을 집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과거사위 결론에 따라 지난 2011년 장경자, 신희중, 이기화 씨 등 유족 3명이 재심을 청구해 7년 만인 지난 3월 21일 대법원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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