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임 숲 해설가, 전국 37개 백운산 두발로 답사

오는 5월 10일 ‘걷는 자의 꿈I’ 첫 수필집 출판

인생의 터닝포인트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난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다. 진통제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내 나이 고작 9살에 일어난 일이다.

학교는 빠지기 일쑤였고, 한발 한발 땅 끝을 스칠 때마다 다리의 고통은 찌릿찌릿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절룩거리는 다리로 언니 오빠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졸업한 초등학교, 유난히 깊고 큰 수술자국이 부끄러웠던 중학교 사춘기 시절,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만 하면 ‘이 시련은 영원히 끝나리라’는 알 수 없는 희망을 품었다.

“지독한 골수염 같으니라고…” 두 다리는 또다시 힘을 잃고 부서져 내렸다. 간신히 버텨 왔던 마음도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리근육을 키워야 해요. 가까운 산을 찾아 걷기운동을 시작하세요”

당시 수원에서 나를 담당하던 의사선생님이 어렵사리 퇴원하는 나에게 내린 마지막 지시사항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등 떠밀려 시작한 등산은 내 인생을 180도 바꿔 놓았다.

산과 사랑에 빠지다

오는 7월 말부터 시작할 생태 숲을 꾸미기 위해 백운산 자락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고 오는 길이라 연신 “덥다”를 외치는 광양시 숲 해설가 정다임 씨는 손부채질과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그와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항상 광양읍에서만 뵐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중마동에 있는 정다임 씨에게 언제 이곳에 계셨는지부터 물었다.

▲ 정다임 숲 해설가 2017년 <계간문예> 수필 등단 ·순천 강남문학회 회원 ·광양시청 근무 ·광양시 숲 해설가 ·광양시 숲길 체험지도사 ·산악안전 법 강사 ·전라남도 산악연맹 이사 ·광양시 산악연맹 자문위원 ·2009년 제1회 전국 숲 해설가 체험수기‘ 은상’ 수상 ·2016년 제3회 전국 산림치유 체험수기‘ 대상’ 수상 ·2019년 <걷는 자의 꿈 I > 수필집

다임 씨는 “작년 2월 말 중마동민과의 대화 에서 중마동에 숲 해설가를 배치해달라는 시민의 요청에 ‘잘됐다’ 생각해서 오게 됐다. 시내도 가깝고, 사람도 많은 중마동에서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펼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답했다. 그는 남은 정년을 숲 체험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울 계획에 들떠있었다.

정다임 씨를 찾으려면 산에 가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40년 간 그저 산이 좋아 산만 찾아다녔던 다임 씨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광양시 숲 해설가라는 새로운 산행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의 40대 중반이었다.

“산이 왜 좋으세요?” 물었다. 그냥 좋으니 좋은 건데, 원초적인 질문에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다임 씨는 오랜 시간 생각마친 뒤 천천히 입을 뗐다.

“처음엔 다리가 불편하니 하라고 시키니까 한 등산이었다. ‘이 악몽 같았던 시간들이 산을 오른다고 해서 치유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든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로 꾸역꾸역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이상하게도 복잡한 마음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픈 이후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엉키고 꼬여있던 응어리들이 하나 둘 씩 풀어지는 듯 했다. 정신은 이내 맑아졌으며, 성취감 또한 남달랐다. 그날부터 난 그렇게 산과 연애를 시작했다”

좋아하면 닮는다 했던가. 산에 대해 이야기 하는 내내 그의 얼굴은 녹음이 푸르른 5월의 산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걷는 자의 꿈’ 출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국산행카페’ 에서 ‘팬지야’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산행기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정다임 씨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는 ‘팬지’라는 꽃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팬지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산행기를 연재했다.

섬세한 묘사, 알찬 정보, 산행의 법칙 등이 담겨있는 팬지야의 산행기는 금세 누리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한 번도 못 본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글 재주가 남달랐을까. 2009년 제 1회 전국 숲 해설가 체험수기 ‘은상’을 수상하며 첫 상을 거머쥔 그는 2016년 제3회 전국 산림 치유 체험수기 ‘대상’을 수상하며 수필가로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오는 5월 10일엔 ‘걷는 자의 꿈’이라는 제목의 수필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걷는 자의 꿈은 정다임 씨가 전국 37개 백운산을 직접 오르며 기록한 산악일기로 산의 유래, 전설과 함께 독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별 높이 순으로 정리했으며, 네비게이션 주소를 넣고 주변관광과 지역대표음식 등을 실었다.

정다임 씨는 “2016년 우리나라 대표 산악인 신영철 대장의 하사품으로 글을 받아 6개월 동안 수정을 거쳐 완성했다. 당신의 제호를 주신 거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며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내 책을 보며 쉽게 오를 수 있었으면 하고, 백운산의 유래와 전설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고 출판 소감을 밝혔다.

<귀감>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고 해봐라.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은 버리고,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라.
새로운 생각, 새로운 방법을 잊지 말자.
계획은 아무리 잘 짜도 부족하다.
결함이 있으면 대담하게, 즉시 고쳐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정다임 씨는 좋은 글귀를 알려주겠다며 작자 미상의 위 글귀를 막힘없이 줄줄 읊기 시작 했다.

그는 “중학교 때 언니에게 선물 받은 글귀다. 벽에 붙어놓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실천했다. 이 글귀로 인해 산행을 도전할 수 있었으며, 무너지려 할 때마다 일어설 수 있었다. 그저 나로 인해 누군가가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산은 오르는 자만이 정복할 수 있는 법이다. 정다임 씨가 산에서 건강을 되찾고, 산을 통해 직장을 얻고, 또 수필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끊임없는 도전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실천정신’이다. 혹시 모르지 않나. 정다임 씨처럼 등 떠밀려 시작한 무언가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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