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마음을 비우고 진솔하게 세상을 보면 아름다움과 재미가 눈에 띈다. 남들의 시선이나 객관적 평가에 관계없이 세상사 ‘웃음 띤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고 해석하니 재미가 쏠쏠하다. “가슴 설레지않은 것은 버려라”고들 하는데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옅어지면서, 얽힌 고마운 사람들과 설킨 소중한 이야기 때문인지 슬픈 기억보다는 즐거운 추억들만이 남아준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라”고들 호들갑이나 오남매 중 막둥이이며 쉰둥이로 태어나 초가삼간 좁은 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사이에서 살을 맞대고 19년을 그 좋은 냄새와 두 분의 정담을 자장가삼아 살아온 추억이 있고 사랑하는 형님 누나들과 토닥이며 같이한 기억이면 족하지 더 이상의 무슨 생의 의미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부모님의 음덕인지 자식들 삼남매는 제각각의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눈방울이 초롱초롱한 손자 놈들 넷은 일 년에 한차례 남짓 상경하는 할아버지가 서운타 않고, 약속이나 하듯 방학 때면 내려와 할아버지와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들 난리고, 경쟁을 하듯 나이 따라 보다 높은산으로 등산을 같이 가자고 보채니 더 이상 기쁜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들이 조금은 유별난 나의 삶에 동의를 보내고 손자들이 한 다리 들고 닭싸움하자 달려드는 이 삶이 나는 즐겁다.

좋은 습관이라는 것이 실천은 어려우나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소중한 권장사항인지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많은 책들이 나와 유혹을 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등에서 “작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성취의 희열을 경험하는 것을 추동력으로 삼으라”고 한다. 특히 공부와 운동을 으뜸으로 이야기하는바 나이 들어 “넓은 세상을 맘껏 구경하며 상상력을 펼치는 책을 벗 삼고” 몸공의 보람을 가르쳐주는 산책을 습관으로 삼고 있으니 자식들에게 좋은 의식을 숙성시켜주는 동기 하나쯤 되어주고 손자들이 엄지 척 들어주니 이 또한 행복할 뿐이다.

처음은 이웃 밭일하는 허리 굽은 노부부를 보며 시 한수 지어보고 싶었고, 한때는 무료하게 시간 보내는 친구들을 위해 소설 한편 써보자 했고, 지금은 손자 네 놈들 위해 동화 한편 꼭 쓰고 싶어 늘그막에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다. “공유는 공감에서 출발하며 글쓰기는 세상 사물에 대한 공감의 과정이다”라는 글도 보고, “사색의 한계는 삶의 한계다” 라는 말도 듣는 등 좋고 다양한 글만 봐서 그런지 세상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뿐 좋은 글은 써지지 않는다.

저주고 사는 것이 왠지 마음편안하고, 세월호 사건을 두고 “수학여행을 가다난 사고에 국가가 너무 휘둘리고 그 정도의 경제적 보상이면 이제 조용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주위의 이야기에 자식을 잃은 고통의 깊이를 함부로 예단하지 말라며 끝까지 이의를 달고, 편안하고 익숙한 이야기 보다는 하지 말라는 정치나 종교이야기, 난해한 이야기를 기를 쓰고 끄집어내 재미있는 여자이야기나 음식이야기에 초를 치는 등 환영받지 못하는 습관만 생긴 것 같다.

이 나이에 인류사최고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들었다는 ‘결핍과 호기심’에 관심이 가고, ‘다양한 경험과 주저하지 않는 도전’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글쓰기 공부 탓일까?

손자들 넷이나 둔 할아버지의 객기인지 싫지는 않다. 누가 알겠는가. 더는 찾을 것이 없다는 돌무더기와 모래 속에서 고고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보여준 이집트의 투탕카멘무덤을 발견 한 것처럼, 일본의 단시 하이쿠(俳句)의 지존 마쓰오 바쇼가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한, 사람의 영혼을 다독여 줄 시구를 누군가 찾는 반가운 이야기를 곁눈질 할 수 있을지.

나의 글쓰기가 인간과 사물을 보며 공감하는 마음으로 늙은 가슴을 따뜻이 데울 수만 있다면더 이상 무엇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산책이 나이든 사람들의 건강관리 목적이 주가 되다보니 이따금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산에 오르는 어린이나 활기 넘치는 청소년을 만나면 참기분이 좋다.

어제는 하산 길에 예쁜 여학생 둘을 만났다. 내가 지나가도 인사말 없이 둘만의 이야기에 열중한 학생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학생들 여성의 아름다움에 향기를 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멈추고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에게 나는 언젠가 읽은 <여자는 무엇으로 아름다워 지는가> 라는 시의 몇 구절을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물기 젖은 손으로 책갈피를 넘기는 열정,” “길가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에도 가슴 설레어하는 생명에의 경애심”이 “여자의 아름다움에 향기를 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라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아를다운 일인가. 다행히 두 학생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며 인사를 한다.
두 학생이 이제 막 꽃망울 머금은 산 벚꽃 보다 더 아름답다. 칠십 넘게 버티어 주고 있는 관절이 좋아라 용수철처럼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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