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며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앞산 위로 밝은 해가 떠오르고 푸른 나뭇잎들의 잔잔한 흔들림이 마치 오월의 싱그러움을 노래하는 듯하다. 정원에 우거진 나무들에서 햇빛을 받은 잎들과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가지들의 명암이 뚜렷하다. 푸른 잎들이 내민 그림자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충실한 가지들이 있기에 자연은 꾸준히 이어오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산촌의 아침을 채우는 투명하고 맑은 공기는 나무들 끼리 함께 푸르자는 다짐과 배려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세상의 빛나는 것들의 이면에는 그들을 위해 스스로 음지가 되는 삶을 사는 누군 가가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며 남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선의이며 아름다움이며 흐트러짐 없는 자연의 질서이기도하다. 내가 아침이면 숲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모두가 그런 과정을 통해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들은 흐르는 세월 따라 자라고 커지고 우거짐을 반복하더니 이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훌쩍 멀어져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은 곳으로 자란 나무들을 바라보면 새삼 세월이 결코 무심히 흘렀음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젠 고목으로 일컬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나의 나무들이 몹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라도 쓰다듬고 싶은 사랑스러움이 생기곤 한다. 내가 산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무들은 매우 어렸고 잘 자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 리지 않고 주관이 뚜렷한 존재가 됐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에겐 주름살이 깊어졌지만 나무들에겐 뿌리와 몸통이 더 강해지고 깊어졌다. 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더 커지고 강해지고 더 큰 쓸모가 생기는데 비해 인간은 갈수록 약해지고 세상 가운데에서 그 쓸모가 줄어드는 듯하다. 이젠 어느 마을에서든 고목을 만나면 나무의 인생이 몹시 부러워 보인다.

멀리서 초등학교 통학생을 실은 노란 버스 한대가 산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다가선다. 길가에 늘어선 아카시아 나무에는 하얀 꽃송이들이 열매인 양 탐스럽게 피어있다. 버스 안에 몇몇 아이들은 지나가고 다시 다가서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매일 아침 자동차를 타고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자연 가운데에 살면서도 어쩐지 자연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향해가는 듯한 아이들의 생장환경이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유년시절 초등학교를 오가며 걸었던 십 여리 길이 생각난다. 허리춤에 책보를 메고 산길을 걸어 학교를 향하고 돌아오던 수없이 반복된 시간들, 십여리 길을 걷자면 어린 나이엔 제법 멀고 힘든 길이었지만 누구나 반드시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오월이면 그 길가에는 아카시아 꽃들이 끊임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우윳빛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사이를 지날 때마다 낮선 곳에 온 듯 풍겨오는 향기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 다보면 막연하지만 왠지 좋은 일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강릉, 속초란 큰 도시의 목적지를 붙인 버스가 우리 앞에 서고 어서 타라고 손짓하는 마음씨 좋은 운전기사를 만난다든지,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화물트럭에 사과궤짝을 한가득 싣고 가는 트럭 운전사 아저씨가 운좋게 빨간 사과를 몇 개 던져줄지도 모른다는 요행이었다.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걷던 우리 앞에 차를 세우고 먼 길을 태워주었던 버스기사와 트럭에서 맛있는 사과를 얻어먹었던 기억 때문에 멀리서 버스나 과일상자를 실은 차가 다가오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차가 뿌리고 간 흙먼지만 요란하게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곤 했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해 하지 않았지만 무료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고 우리를 따라다니는 허기 때문에 우리의 발걸음을 무거워지곤 했다. 걷는 도중에도 머리 위에 매달린 꽃은 여전히 향기로워서 우리는 수시로 아카시아 꽃을 허겁지겁 먹곤 했다. 달큰한 꽃은 우리의 입속에서 향기로웠지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은 될 수 없었다.

걷는 지루함을 잊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시작했던 가위바위보 게임은 한웅큼씩 아카 시아 잎을 모두 떨구어야 끝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무료함의 흔적처럼 길 위에는 시든 잎들이 마른 채 흩날렸고 애꿎게 아카시아 잎만 한 잎 두잎 떨구면서 조금씩 무료함을 거두어 내다보면 저절로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르곤 했다.

그 때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길이 시작 되는 언덕에서 바라본 바다는 거침없이 푸르렀고 우리는 먼 바다를 향해 앉아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그동안 쌓인 우리의 무료함과 피로, 배고픔도 잊게 해주는 희망 같은 것이었 다.그 때 수없이 걷던 길 가운데에서 바람 따라 흐르는 하늘의 구름을 뒤쫓기도 하고 길가에 늘어선 나무를 헤아리기도 하던 그 시간들이 나를 키워온 듯하다.

나와 함께 수고하며 길을 걸었던 친구들과 꼬불거리던 그 길을 찾고 싶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황급해지고 넓고 바르게 펼쳐진 길은 자연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월이 갈수록 마음을 붙잡아두던 작은 길도 이야기들도 사라지는 듯 하여 못내 아쉬울 뿐이다.

문명과 함께 길을 가는 아이들의 생각도 순수 함도 그 두께가 점차 얇아져가는 것이 아닌지. 길가에 줄지어 선 아카시아 꽃을 볼 때마다 내겐 마음 속 깊이 묻혀있는 정겹고 해묵은 이야기들이 무성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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