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전)광양경찰서 수사과장

▲ 임광재 전)광양경찰서 수사과장

어느 날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채로 통기타 하나만을 둘러매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지구를 반 바퀴쯤 돌아 낯선 유럽 어느 나라의 공항에 내린다. 오줌싸개 분수가 있는 광장 어느 한구석에 서 있다. 석양이 내려 어둠이 깔리며 외로움이 몰려온다.

통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차분하게 4분의 3박자인 왈츠곡을 연주한다. 나중에는 비트가 빠른 고고를 연주하다가 슬로우 고고에서 소울이 느껴지는 슬로우 락을 빠르게 연주한다.

그리고 밝고 명랑한 멜로디인 칼립소 곡으로 연주를 마무리하면 제격이다. 기타 소리를 듣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던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연주를 마치자 사람들은 브라보를 연호한다.

마지막으로 “해 뜨는 집”을 튕기고 나니 박수갈채가 광장을 가득 메운다. 모자를 벗어들고 관중들을 향하여 한 바퀴 돌자 금방 지폐가 가득히 쌓인다. 다음날 인근 도시로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부족하지 않다.

이상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통기타 연주를 상상하며 꾸었던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오늘도 통기타를 배우러 평교에 간다.

평교란 전남도교육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관을 줄인 말이다. 이 기관은 전남에는 광양시와 고흥군에만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으니 이 지역 사람들은 큰 특혜를 입고 있는 셈이다. 그곳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긍정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붐비는 곳이다.

나도 정년퇴직을 하고 난 그해 가을학기부터 평교를 다니고 있으니 이제 만 4년이 다 되어 간다.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강좌마다 지원자가 넘쳐나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인터넷으로 접수를 할 때에 간발의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아 인터넷 활용에 능한 손자녀의 신세를 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며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등록에 성공한 사람들은 가끔 인터넷 접수 성공의 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한다.

나는 악기 부문은 대금을 몇 학기 하다가 수업 참석이 편리한 아침 시간에 이루어지는 통기타 초급반에 세 번째 다니고 있다.

등록이 되어 통기타 초급, 중급, 야간반 수업을 하는 평생교육관 건물 맨 아래층 101호 강당에 들어서면 보관함에 강사님이 수시로 튜닝을 해 놓은 1번부터 20번까지 여성과 남성용 통기타 스무개와 넉넉한 보면대가 갖추어져 있어 개인이 통기타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수업을 할 수 있다.

수업 횟수는 1주에 2회인데 공휴일을 제외하고 한 학기당 30회 정도 수업을 한다. 나는 3학기째이니 1년 반이 다 되어 가는데 처음엔 코드를 짚는 왼쪽 시지 중지 약지 소지 끝이 아파서 혼이 났다. 이제는 손가락 끝에 제법 굳은 살이 박혀 그렇게 아프지는 않고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잡는 피크도 제멋대로 놀지 않으니 다행이다.

첫 수업 시간에 내 손가락으로 이루어지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정과 어느 정도는 장중하면서 우울한 에이마이너(Am) 단조의 화음이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 일은 기타를 가까이할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왼손이 짚는 코드와 오른손으로 하는 박자에 맞는 스트럼, 입으로 노래부르기의 3위일체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어렵고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에이마이너(Am) 씨(C) 이엠(Em) 지(G) 디(D) 등의 코드가 들어 있는 쉬운 곡은 떠듬떠듬 칠 수 있다. 하지만 에프(F) 비세븐(B7) 비엠(Bm) 등 일종의 하이코드는 아직도 제대로 짚어지지 않아 턱턱 거리는 소리가 난다.

통기타 수업은 두 시간 진행된다. 먼저 한 시간은 지난 시간에 배운 주법을 개인적으로 연습을 한다. 개인 연습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같은 반 수강생들과 간식과 커피도 나누어 마시면서 인간적인 교분을 나눈 후 나머지 한 시간은 강사님의 지도 아래 합주를 하는데 그 시간은 내가 설령 잘못 치더라도 강사님과 다른 수강생들의 연주소리에 묻혀 그럴듯하게 들려 즐겁기만 하고 또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어 주법이 교정되는 유익한 시간이다.

연습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주법 중에 고고와 스윙 또는 셔플 주법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수강생들은 거의 코드만을 짚어 가며 합주하는데 강사님은 코드연주와 함께 멜로디를 연주해 주시는데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고 나는 언제 저렇게 연주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애가 터지기도 한다.

젊어서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건너편에 앉아 돋보기 너머로 악보 쳐다보랴, 코드 짚는 손가락 쳐다보랴 바쁘신 물 건너 마을에 사시는 6.25 전쟁 무렵에 태어나신 큰 누님 또래의 여성 수강생에 비하면 무슨 나이를 탓할 형편인가.

얼마 전에는 같은 마을 사는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타 배우러 다닌다던데 연주 한 번 듣고 싶다고 청하여 기타 교본 앞부분에 나와 있는 “과수원길”을 비롯하여 세 곡을 연주하였는데 긴장하여 진땀이 나긴 하였으나 남 앞에서 기타를 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조금 들고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각오를 하였었다.

통기타에 대한 나의 소질과 기량, 이제까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따져보면 아마도 나는 예전에 가졌던 꿈처럼 기타 대가들 마냥 많은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 일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광양평생교육관 101호 강당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좋은 사람들과 두 시간 동안을 온전히 6개의 기타줄에 신경을 곤두 세우며 몰두할 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공자가 설파한 인생삼락 중의 하나인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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