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용 변호사

얼마 전 보수언론들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보도를 쏟아낸 적이 있다. 국회부의장인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0년 전 학생운동을 하면서 누가 선·후배를 더 많이 수사기관에 고변하였는지를 두고 싸우고 있다는 보도였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사기관에 잡혀가면 선·후배들 명단을 적어내게 하고, 안 적어내면 무자비하게 고문을 했다. 명단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곧 잡혀가거나 수배를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학생운동을 하는지 여부가 비밀이어야 했고, 학생운동 조직은 非합법 형태를 띠게 되었다.

최근 유시민이 한 TV프로에서 80년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수사기관에 명단을 적어내긴 하였지만, 학생운동 조직이 드러나지 않도록 꾀 있게 명단을 작성하였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방송되자 심재철이 당시 유시민이 적어낸 명단 때문에 많은 서울대 선·후배들이 수배를 당하였다며 유시민을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이 다시 반박 하였고, 보수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가려야 한다며 보도를 이어갔던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은 정치적 반대자를 고문과 협박으로 탄압했다. “야당의 유력 정치인 김대중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내란을 준비하고 그 일환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추켰다”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도 고문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이다. 그리고 당시 재판에서 “김대중으로부터 광주에서 소요를 일으키라는 지시와 함께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람 중 한 명이 심재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함께 재판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는 심재철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을 때 뿐 아니라 고문의 위협이 사라진 법정에서도 그 진술을 유지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당시 겨우 스물 몇 살이던 청년이 고문을 못 이겨 거짓진술을 하고, 겁에 질려 법정에서도 그 진술을 이어간 것을 두고 그렇게 까지 비난할 일일까 의문이 없지 않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고문을 자행하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 군부정권을 탓하는 대신 두려움에 심약해졌을 청년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매에 장사 없다고 고문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문에 못 이겨 거짓진술을 한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 살게 된다. 고문이란 그렇게 인격적 가치를 파괴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반인륜적 범죄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고문을 이겨냈건 못 이겨냈건 간에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와 함께 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잘 알려진 대로 심재철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학생운동의 상징인 총학생회장이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달리 무죄 석방되었고, 1985년 MBC에 입사하여 10년 간 기자생활을 했다. 유죄판결을 받은 학생운동권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후 그는 1996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에 내리 다섯 번 당선되었고, 지금은 자유한국당 몫의 국회부의장이다. 심재철이 그 동안 몸담았던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은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을 계승한 정권이고 이명박, 박근혜를 배출한 정당이다.

그런 정당에 몸담고 있는 심재철이 전두환에 의한 고문과 광주에서의 학살에 대한 비판 대신 이력에 공과는 있겠지만 그래도 대학시절 가졌던 정의의 신념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을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옛 민주화동지를 비난하기 전에 80년 이후 자신이 누구와 함께 지냈고 어떤 가치를 지향했는지 밝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옹호하였던 보수언론들이 역사성을 배제한 채 진실게임마냥 그 때의 일을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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