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이사의 지혜, 줄이고 버리기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만물이 탄생과 성장, 노화와 소멸을 한다는 원칙이 있듯 집과 살림살이도 늘릴 때가 있으면 줄일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사를 하면서 남을 의식하거나 체면 때문에 또는 관습에 젖어 줄이거나 버리지를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37년간의 직장 생활동안 한번 승진하면 순천에서 광양 여수를 한 바퀴 도는 이동 때문에 이사를 20여 차례를 했다.

집사람 말대로 실속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제 안정된 생활을 해야 할 나인데도 몇 일전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또 했다. 나이가 들면 소중한 추억을 찾고 마음에 담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이제 남은 가장 큰 이사인 죽음 말고는 마지막 이사가 되기를 희망해 보며 그동안 이사로 이어진 내 삶의 추억들을 뉘를 고르듯 찾아본다.

큰형님께서 아이들 넷을 남기고 돌아가시고 형수님이 집을 나간 탓에 결혼 전 9년 동안을 용돈 외에는 월급을 어린 손자들을 돌보시는 아버지께 보내드린 탓에 다른 동료들처럼 적은 집이나마 장만하지 못하고 나는 50 만 원짜리 전세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우연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집주인 아들 부부와 같은 집에서 생활하다보니 나의 자존심보다는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카들 세 명이 취업을 위해 집을 나가고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와 부모님만 남아, 나는 양자로 간 작은형님을 대신해 방 두 칸 자리를 얻어 같이 살게 되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항시 어머니의 체취가 그리웠는데 막둥이인 내가 부모님을 모시게 되어 나는 마냥 행복하였고, 부모님들이 아내를 극진히 아껴주어 그런지 아내도 어머니와 손을 잡고 오일시장을 가는 등 친정어머니와 딸 같은 아름다운 생활 속에 나의 이사 역사는 시작되었다.

일 톤 트럭 한 대와 리어카 한번으로 시작한 살림은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사는 집의 규모가 커지며 점차 늘어났다. 문제는 나이가 많아지고 아이들이 객지로 떠난 뒤 부부 둘이 살면서도 정이 들어 버리기 어려워서인지 이사 때 마다 집사람과 나는 줄이기와 버리기 문제로 다툼이 있어왔다. 옷을 맞출 때는 체촌(體寸)을 한다. 그것은 몸에 어울리고 편안한 사이즈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47평을 정점으로 36평을 거쳐 이번에 29평을 택했다.

그것도 미혼의 딸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25평을 주장한 나보다 집사람의 강변이 통해서이다. 한옥과 달리 거실의 창이 넓어 시야가 시원한데 부부가 둘이 사는 집이 청소문제도 있지만 노년을 붙어살며 조금이라도 덜 외로운 것 이상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자식들이 와서 머무는 시간은 다해야 1년에 열흘 남짓 하다. 주위의 많은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집을 줄이는 것을 망설여한다. 그 이유 중 이사 짐의 문제도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사교모임 형태가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여 경쟁하듯 좋은 그릇에 성의껏 차린 음식과 차를 대접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외식으로 대접이 이루어져 그릇 등을 쓸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이번 이사에서 집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가장 아끼는 책을 250여권 이상 또 버렸다. 나이가 들며 정이 들었던 것을 버리는 것은 이별의 연습이라고 생각해서다. 이삿날 붙박이장은 이번 이사에도 그대로 옮겨야했고, 일 년 동안 한 번도 이용한 일이 없는 그릇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성당 바자회에 보내겠다던 아내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짐들이 차속에서 밤을 새고 이튿날까지 이사는 계속되었다.

화를 내는 나에게 집사람은 낮은 목소리지만 결연하게 말한다. “이사 짐 서비스가 생기기 전에 이 모든 가구와 그릇들은 나 혼자 밤을 새며 몇 차례나 포장하고 진열한 정이든 것들입니다.” 나의 설득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사를 많이 해보니 우리들은 가장 소중한 집과 살림살이들의 기준을 실질적인 편익보다 체면이나 남들의 시각에 얽매이는 것 같다. 외국을 여행해보니 선진국들은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을 엄격히 구분하여 하루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은 주거환경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듯했다. 호주의 경우는 조용하고 쾌적하다는 이유로 무덤인근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평소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토종닭 20여 수 길러 자식들이 오면 모두 둘러앉아 맛있게 구어 먹고, 꼬리 잘 치는 강아지와 졸래졸래 따라오는 염소 한 마리 기르면서 책 읽으며 살고 싶었다. 집사람이 뇌경색이 걸려 병원 가까운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자고 부탁해 산자락 아래 조용한 아파트를 골랐다. 온통 주위가 숲이고 인근 산에 오르기도 편하다.

사람들은 학교나 시장이 가깝다는 등을 이유로 삼으며 저마다 사는 곳에 정을 붙이고 살아간다. 어머니 자궁에서 열 달을 보낸 인간은 원초적으로 좁은 동굴을 그리워 한다는 말이 있다. 살아보면 작은 집이 적응이 되고 정이 들면 뜻밖에 편리한 점이 많다, 행복의 의미를 또 하번 손세탁해 볕 발에 내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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