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과분한 사랑’ 대신 현실에 맞는 ‘성숙한 사랑’ 보여줘야 할 때

▲ 허형채 삶터 협동조합 대표

제조업이 망하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가방이나 옷, 술 등을 생산하는 단순 소비재 제조업이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설비’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철’을 만드는 업종이라면…. 그래서 철을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 광양과 포항은 ‘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옥토다.

포스코는 많은 사람의 입에 ‘따뜻한 음식과 옷’, ’환경’이라는 양날의 검을 안고 50년 동안 대한민국 제조업의 역사를 구축해왔다. 그런 포스코가 요즘 ‘수난 시대’를 겪고 있다. 공익성 제보가 아니라 개인의 이해타산에서 시작된 고로 브리더 문제부터 최근 정전사태까지…. 지역 환경단체는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해 ‘과분한 시민 사랑’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환경단체의 그토록 ‘과분한 시민 사랑’에 그만 눈을 감고 싶어진다. 사랑을 그만해주던지, 좀 쉬었다가 해주든지 하면 좋겠다.

엉뚱한 사랑 타령은 다름이 아니라 시민들 모두 잘 알고 있는 광양제철소 이야기다.

고로 브리더 문제도 그렇고 정전사고도 그렇고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도 규제에 의한 절차만 기다릴 뿐 사태에 대해 사과문 한 장 시의적절하게 내놓지 못하는 광양제철소의 도덕적 책임까지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국회 정론관까지 가서 규탄집회를 여는 일부 환경단체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광양의 환경문제의 주범이 광양제철소라는 그들의 주장은 광양을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이라고 만방에 알리고 있는 ‘제 살 깎아 먹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환경단체의 행위가 진정 시민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궁금하다.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제철소가 문을 닫는 것일까? 제철소가 문을 닫으면 대기환경이 금새 지리산 맑은 공기로 변하나? 그럼 여수산단이 영향을 주는 오염물질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제철소가 문을 닫으면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지니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또, 정말로 시민을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면 이제는 그 사랑을 잠시 멈추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투쟁 일변도로 나간다고 해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브리더 기술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기환경이 당장 좋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환경과 경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기업들은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적정선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했고 그 법과 제도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

‘반사이익’이라는 표현은 좀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양은 제철소가 들어서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고 그들 또한 그 ‘반사이익’과 ‘환경단체 이념’ 사이에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 환경단체의 허위정보에 의한 성명서 남발은 광양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인식되게 할 뿐 아니라 ‘시민을 팔아 시민을 못 살게’ 만드는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기오염이 그리 걱정되면 자신들부터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녀야 할 것이다. ‘시민을 사랑해서’ 펼치는 환경운동이라면 무슨 거대한 칼날이라도 쥔 양 기업에 대해 ‘환경 갑질’은 이제 한 박자 쉬고, 적어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국회 정론관까지 가서 펼친 일부 환경단체의 목소리와 함께 광양은 반대만 하는 곳이니 투자하기가 겁나고 무섭다는 목소리가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다.

여기저기 있는 땅 없는 땅 다 밀어서 아파트를 짓고 인구유입 한다고 행정은 기를 쓰고 있는데 이사를 오려고 해도 일부 환경단체와 그들의 주장을 거르지 않고 써대는 언론 때문에 광양으로 이사 오기가 겁난다는 소시민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는 그들의 주장에 그닥 공감하지 않는 시민을 ‘팔아’ 부정적인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필요하다면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현명하고 성숙하게 대안을 모색하는 단체로 다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제철소가 문을 닫고 폐허가 된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례가 생각난다.

광양제철소가 문을 닫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들은 이제 진정 누구를 위한 환경운동인지 ‘명분 없는 과분한 사랑’보다는 현실에 맞는 보다 ‘성숙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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