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모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첫 음정을 너무 높게 잡다보면 결국 고음을 소화하지 못해 동석한 분들에게 웃음이나 불편함을 줄때가 있다. 나이 들며 화를 내는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적은 서운함이나 사소한 의견차이로 출발한다. 같이 늙어가며 외로워서 자주 모이는 사이인데 무슨 큰 원한 같은 것이 있겠는가. 요즘 몸의 움직임도 예전과 다르고, 논리적 의견전개도 여의치 않고, 기억력 또한 희미해져 판단이 옳고 그름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든다. 집을 나서면서 마나님의 곱잖은 구시렁거림을 받았다면 애시 당초 내 탓임을 명심해야 한다.

분노는 처음의 의도를 뛰어넘으며 어쩌다 보면 자제력마저 무력화시킨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내가 아닌 악마의 노예로 변신한다. 옆 사람들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 ‘오해와 이해의 부족에서 출발 하였음에도 저렇게까지 화를 낼 수밖에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굶주림의 이유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로도 칼부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의 총기난사와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도 반복이 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인식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침마다 보여주는 막장드라마는 욕을 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고, 저런 기막힌 사악함도 지금 이 순간 세상사는 이야기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우리를 오도한다.

뉴스를 가득 메우는 원망과 분노들도 부채질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무더위 등으로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평범한 사람도 공격성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의 범죄통계에 의하면 7,8월은 범죄율이 높다고 한다. 화냄은 전염성이 있고 확장성이 있다. 짜증은 면역력을 파괴하여 질병의 원인이 된다. 미세먼지보다 심각한 사회 공해이며 지혜롭고 선한국민으로의 의식형성에 역행을 한다. 지하철에서, 등산길에서 이유 없는 폭행과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자행되는 이 시대 병증의 원인 중 하나가 화냄 아닐까?

달라이라마와 더불어 세계 종교계의 두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일컬어지는 베트남 출신 선승 틱낫한은 채소밭을 가꾸고 명상을 하고 시를 쓰면서 우리의 마음을 밭에 비유한다. 돌을 고르고 잡초를 매듯 미움과 분노, 폭력 등은 골라내고 사랑과 자비, 희망과 열정 같은 “좋은 씨앗에 물주기”를 하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일생을 두고 옆에 같이하고 싶은 몇 마디 아름다운 말들을 속삭여준다.

숨을 들이 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지금 이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미소는 내가 사념에 물들지 않았음을 뜻한다.
웃는 순간만큼은 정직하고, 착하고, 성실한마음으로 서로의 행복을 축원하는 기운이 마음속에가득 차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6년 정도 긴 이유를 남자의 생활습관에서 찾았다. 남자가 흡연이나 음주가 더 심하고 직장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와 많은 활동으로 교통사고 등의 위험요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이조시대 내시의 평균수명이 보통사람보다 더 길었다는 사실을 규명하며 힘의 상징인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노년이 되면 그 기능을 잃고 방황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분함을 삭히지 못해 심장질환과 동맥경화 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포용과 섬세함, 사랑의 상징인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웃음과 수다로 아쉬움을 달래며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장수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한다. 일본속담에도 “장수하려면 목에 힘을 빼라”는 말이 있다.
성인군자가 아닌 우리가 불쑥 튀어 나오는 울분을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첫 승진을 하여 부임길 여수를 향하던 버스 속 버려진 신문에서 “신경질은 어리석음으로 시작하여 후회로 끝이 난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이며 소중히 암송하고 있으나 지금까지도 ‘어리석음과 후회’는 반복되고 있다. 스스로자책을 하면서 다짐은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의 밭’을 일구듯 따뜻한 햇살에 고마워하고 산책길에 만나는 이름 모르는 들꽃들과, 떨어진 낙엽과 솔방울 하나의 존재에도 감사하고, 새소리 바람소리로 마음을 고르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눈다.

화냄은 분명 흔들림이다. 광고용 비닐인형에 바람을 불어넣어 일으키듯. 빈 쌀자루에 곡식을채워 세우듯, 나름의 삶의 계획과 그 재미있는 실천과 이따금 뒤돌아보며 가져보는 나만의 정체성 학인과, 작지만 이루어가는 성취의 희열이 주는 안온함으로 마음을 꼭꼭 채우고 가슴을 펴고 꿋꿋이 서야 한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상대의 논리적 반격이나 주위 사람들의 양비론적 비평이 문제가 아니라 왠지 나이 들며 초라해 보이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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