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전)광양경찰서 전 수사과장

▲ 임광재 전)광양경찰서 전 수사과장

토요일 저녁 무렵이 되면 자주 이용하는 슈퍼마켓 앞이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특히 마켓 옆에 붙어 있는 복권판매대 입구가 분주하다. 마치 꿀벌이 꿀을 물고 들어가 꿀을 저장하고 나오듯 사람들은 잎의 지폐를 가지고 가서 복권의 시스템에 꿀을 저장하고 그 대신 복권이라는 달콤한 꿈들을 들고나온다.

복권을 구입하여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무슨 비밀스런 일이라도 저지르고 나오는 듯 주위를 살피며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첨이 현실이 되었을 경우 이루어질 환상에 젖어 벌써 득의로 가득찬 모습도 있다.

나도 이따금 로또복권을 구입한 사실이 있는데, 아내가 자신의 승용차를 갖고 싶어 할 때, 주변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자금난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온갖 질병과 전쟁, 배고픔으로 힘들어하는 아프리카의 불우한 아이들이 생각날 때 주로 샀었다.

더러는 복권이 사행심과 한탕주의를 부추긴다며 그 역기능만을 들추어 말하지만 매사가 그렇듯이 역기능이 있으면 순기능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복권을 사서 품고 있으면 일주일 내내 꿈과 희망이 있어 좋다고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푼돈을 모아 몇몇 사람들에게 몰아주어 재정적으로 여유롭게 해주니 좋은 일이고 또 복권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유익한 일 중의 하나다.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은 우연일까? 복권당첨 확률이 벼락 맞을 일보다 낮다고들 하지만 올바른 비유는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벼락은 주변 환경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복권을 반드시 당첨되는 사람들이 있기에 확률에 관한 문제이지 우연은 아니라고 본다. 일등은 800만분의 1, 이등은 160만분의 1의 확률로 당첨되는데도 복권을 샀다가 어떤 이유로 든지 당첨을 확인하지 않아 찾아가지 않은 돈이 지난 4년간 1700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우연이나 행운도 부지런하고 준비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면서 내 주위에 일어난 복권과 관련한 상반된 에피소드 두 가지 생각난다. 먼저 10여년 전 S경찰서에서 재직 중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로또복권 일등에 2게임이 중복당첨되어 20억원 이상을 수령한 사람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며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달라며 민원인으로 찾아왔었다.

그는 H 회사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하도 살기가 힘들어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후, 로또에 승부를 걸기로 하고 당첨되기 전 2년 동안 잠들 때도 로또, 밥 먹을 때도 로또만 생각하며 모든 것을 로또에 걸었다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염력이 통해서였을까. 드디어 그해 1월경 꿈속에 여섯 개의 번호가 선명하게 떠올라 확신을 갖고 같은 번호 두 개를 썼으며 그 번호가 일등으로 당첨되었단다. 당시 당첨번호를 확인한 것은 회사 경비원 대기실 안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당첨된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의 눈빛이 달라지면서 몇 사람은 당첨금을 수령하러 가는데 동행을 주겠다며 자청하여 나서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첨 사실을 안 자식들은 환각제를 맞은 양 갑자기 들떠 열심히 하던 취직시험 준비도 팽개치고 이제 돈이 생겼으니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 되더란다. 당첨금을 수령해 주변에 힘들게 살아가는 친인척들과 동료들에게 얼마간씩 나누어 주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고향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도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주거지를 옮겨 몇 개월 살았단다.

친인척도 친구도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마땅한 대화상대도 없어서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여성을 만나 지내게 되었으나 외롭기는 마찬가지여서 다시 고향을 찾아왔는데 고향을 찾아온 다음 날 아침 외출하려고 주차장에 나가 보니 직장 동료였던 두 사람이 또 찾아왔더란다.

그들은 평소에 좋은 감정으로 지냈던 친구들이라 그래도 몇 백만원씩이라도 나누어주려고 하였는데 그 다음 날 다른 두 사람을 더 데리고 오는 바람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였단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손을 벌릴 텐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스무 살 안팎의 딸은 아버지가 막대한 당첨금을 받았으면서도 돈을 달라는 대로 주지 않는다며 아파트 등기권리증을 몰래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저당 잡혀 그 돈을 가지고 가출해버렸단다.

“차라리 당첨되기 전 형편은 어려웠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소박하게 살았던 때가 한없이 그립다면서 로또가 당첨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이나 갈등은 없을텐데”라며 후회스러워하였다. 그는 사무실을 나가며 단호하게 말하였다. 로또는 당첨될 때의 기분이 좋았을 뿐이지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절대 로또를 사지 말라고, 혹시나 당첨되면 자기처럼 불행해진다고.

이번에는 현재 서울에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어떤 변호사의 이야기로 복권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뜻을 이룬 경우이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2차 시험에만 낙방하여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 제대 후에 다시 시험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으나 수험서 몇 권 살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단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시험 합격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바닷물이 해일처럼 몰려들면서 상어 같은 큰 고기가 자기에게 다가와 함께 노니는 것이었다.

여느 꿈 같지 않아 다음날 복권판매대로 달려가 당시 주택복권 2장을 샀단다. 당첨을 기정사실로 믿고 싶었다. 좋은 꿈도 꾸었으니 당첨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1등에 당첨이 되면 할 일-전세방에서 새 아파트를 사서 이사 들어갈 일, 부모님 고생시키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일. 이 여름날의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단다.

그러나 복권당첨이 있는 날 막상 일등 당첨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여러 갈래의 아쉬움이 그를 엄습하였다. 가장 커다란 아쉬움은 그때까지 품어온 인생의 꿈이 서린 도전의 끝을 맛보지 못하고 미래의 삶이 흐물흐물해져 버릴 것 같았으며 당장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느끼지 못할 거라는 실망감과 자신을 던져서 최선을 다해야 할 순간에 몇 푼의 돈이 보장해 주는 안일에 인생을 건다는 것이 끔찍한 일로 여겨졌었단다.

그래서 그는 며칠간 마음을 가득 채워온 당첨이 기정사실화된 복권 두 장을 미련 없이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단다. 그걸 찢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잡념이 사라지면서 평정심을 되찾게 되고 흔들리던 투지가 더욱 넘쳐나더란다.

그 후 그는 1년 반 동안 수험준비에 몰두하여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하여 면목을 일신하였단다. 그는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일순간 안절부절하며 요행을 바라고 편한 길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요행으로 잃어버릴 삶의 희열이나 무게를 생각해 볼 일이다. 당첨된 복권을 찢듯 요행에 의지하는 나약한 정신을 과감히 버리면 반드시 깊이 있고 가치 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찢어버린 복권이 인생의 꿈을 이루는 데 일조하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경우처럼 복권을 사고 당첨된 사람들이 누구나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복권에 당첨되어 불행해진 사람보다는 행복해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 여부는 성실성과 자기관리가 전제되지 않고 요행을 바라며 복권만을 산다거나 당첨 이후에 돈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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