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서(광양여고 1학년)

친구한테 전화를 걸면 미약한 신호로 인해 연결이 끊긴 적이 몇 번 있다. 그것이 몇 통이고 지속될 땐 짜증이 나고 결국 전화 거는 것을 포기한 적도 있다. 전화를 건 이유는 말하고자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끝내 전화가 닿지 못해 부재중으로 찍힌 것은 전화뿐만 아니라 내가 말하고자 한 정보이다.


정보가 오고 가는 것에서부터 소통은 시작된다. 소통의 특성 중 하나는 쌍방향성으로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받기만 할 때를 소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소통의 종류는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얼굴을 마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화, 영상통화, SNS, 문자 등을 통해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주고 받는다.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전달로 더 이상 모르는 것은 없다. 단지 접하지 않거나 미처 보지 못한 것일 뿐 원한다면 알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은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현대과학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소통의 방식이 전보다 덜 쓰이게 되면서 우리의 감정은 메말라 간다. 얼굴을 마주보고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오감으로 소통하는 대신 휴대폰의 글자들로 우리의 감정을 주고받다 보면 당최 상대의 표정과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상대의 손가락이 만들어낸 몇 문장과 단어들이 많은 것을 전해줄 수는 없다. 이것이 진정 소통일까?


얼굴을 마주보며 말을 하더라도 오해의 소지는 생기기 마련이다. 가령 말을 잘 못 이해했다거나 스스로의 편견에 의한 주관적인 판단들 때문에 그런 일은 흔하다. 나 역시 친구의 말을 이해를 못할 땐 그냥 웃어넘기기도 하거나 이해한 척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대화 중 주변 소음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을 경우 황급히 대화를 끝낸 적 도 있다. 나로서는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소통 부재의 시작이었다.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상대가 하고자 한 말들과, 내가 놓친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정말 소통하기 위해선 얼굴을 마주보고 소음하나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둘만 마주보았을 때여야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정적인 공간이라면 더 답답해서 말이 잘 안 나올 것 같다.


종종 내 눈을 친구의 눈에 맞출 때가 있다. 쳐다본 것이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에 내 친구들은 화들짝 놀라거나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어쩌면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아니라 소통의 시작을 끊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고, 그 친구에게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쳐다본 것은 아닐까. 정보를 얻기 위한 것만이 소통은 아니기에 말이다. 꼭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만 소통은 아닌 것이다. 그저 감정을 공유하고 느낀 것을 편하게 말하는 것도 일련의 소통이다.


많은 것을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게 되겠지만 그런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주저한다면 발전은 없다. 나 뿐 아니라 사회도 그러하다. 디지털 시대에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에 익숙해져야 하며 그것이 자신을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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