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감동은 스스로 일구어내는 삶의 에너지

카톡이 날아온다. 인간이 감동을 느끼면 암을 억제하고 통증을 해소해준다는 엔돌핀의 4천배 효능의 ‘다이돌핀’이라는 뇌하수체 호르몬이 생겨난다고 한다. 좋은 노래를 듣거나, 아름다운 풍광을 보거나, 따듯한 사랑을 나누거나, 새로운 진리에 감명 받을 때 감동은 느껴진단다. 감동은 타자에 의한 주어짐의 결과일까, 받아들이는 나의 고운 성정(性情)의 문제일까. 쉬 분노들 하는 세상, 나이까지 들어 뜨거운 감정은 많이 줄었지만 일상 속에서 감동을 찾고 그 씨앗을 받아 가꿀 텃밭을 호미질 하듯 오늘 하루를 뒤돌아본다.


서산을 오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얼굴이 바뀌면서 둘레 길을 넓히고, 큰 돌 틈을 자갈과 흙으로 메우고, 주변 잡초나 튀어나온 가지를 정리해주는 고마운 분들을 자주 만난다. “수고하십니다”하고 말하는 나의 가슴에 작은 일렁임과 감사의 마음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오늘도 천사를 보았네!
나는 두 시간정도의 산행은 물을 준비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이 탓인지 올여름 무더위 탓인지 갑자기 갈증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집에서 나오면서 물 한잔을 들고 나오는 것을 깜박했고 오늘따라 커피도 들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까 난감해하며 서산 코재 계단을 올라채니 전망대에 한분이 얼음이 담긴 큰 생수병을 들고 서 있었다. 양해를 구하며 물을 부탁하니 오늘은 날이 너무 더워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하려던 참이라며 얼마든지 먹어라 권한다. 비록 물 몇 모금 이지만 그분의 베품과 나의 필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에 우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본다. 역시 나는 행운아라니까!


갈림길에서 웅방산을 오르는 길에 매실을 가꾸며 길가에 호박을 여 나무 구덩이 심어놓은 일전에 통성명을 나눈 73세의 농부를 만난다. 등산객들이 크기도 전에 호박을 다 따 가는 것이 서운하지 않으냐는 나의 말에 “그래도 내가 가져가는 것이 조금은 많을 것이요”라며 소박하게 웃던 노인네다. 몸이 쇠한 탓 인지 호박구덩이 주위 잡초가 무성하다. “요즘은 호박이 맺기도 전에 어린 호박잎부터 다 따 가요” 올 매실농사는 어땠냐는 물음에 “첫 물로 매실 100상자를 수확하여 100만원을 받았는데 매실을 딴 인건비 70만원과 병충해 방제비 남짓해 다음 수확은 포기했소”하며 힘없이 웃는다. 검게 탄 노인네 야윈 몸보다 소박한 그분의 마음이 더 가벼울 것 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노인네 건강을 빌어본다. 언젠가 훨훨 날아 편히 쉬시오!


서산 둘레 길은 광양사람들이 주로 다녀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시 지역이 일부 있다. 3백여 미터 순천 지역길이 갓길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여성분들이 행여 뱀이 나타날까 불편함을 느껴왔는데 오늘은 서너 분이 제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나오셨냐고 물으니 광양시청 공원 녹지과 직원들이 직접 나왔다고 한다. 별것 아니지만 광양시청에서 나왔다고 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시지만 우리시가 앞장서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우쭐해 진 것이다. 나는 작업하는 분들에게 진심어린 격려의 말을 해주며 힘차게 걸음을 재촉했다. 부디 복 받으시오!


인생이 그러하듯 매사가 정해진 철칙은 없는 것 같다. 칠십이 넘으니 친구들이 ‘과유불급’을 이야기하며 무리한 운동은 피하라고들 이야기한다. 올 여름 기운이 전 같지 않아 나는 반대의 길을 택해 보았다. 이틀 기준으로 한 시간 이십분 정도 하는 산행을 두 시간으로 늘려 잡았다. 50분정도의 서산•웅방산 등하산 외에 둘레길 1시간 10분 정도는 거의 평평한 길이다. 누구 보는 사람도 거의 없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으며, 때론 뛰기도 하고, 엉덩이춤도 쳐보고, 노래도 불러본다. 울어대는 매미처럼 70 넘은 노인의 굳어진 허물을 애써 벗어 던질 듯이. 고착을 벗어난 움직임은 내 몸에 활력을 주는 것일까. 몸에 힘이 느껴지며 잠 맛이 붙는 것도 같다. 나무 관세음보살!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나는 모든 만남과 이야기 속에서 감사함을 찾아 인식하고,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하려 애쓴다. 그래서 감동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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