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광양여고 1학년

▲ 김민서 광양여고 1학년

고 1의 2학기가 시작 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진로와 적성, 흥미에 대한 확신이 없는 터라 마음만 막막해져 답답하던 때에 2학년 때 배울 선택과목을 추석 동안에 정해야 했다. 무슨 과목을 배울지는 진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고민을 했다. 흥미가 가는 과목도 있었지만 두려우면서도 선택에 갈등을 겪은 까닭은 ‘내가 정한 진로가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쉽게 진로가 바뀌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주위 친척들과 사촌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어른들이거나 대학생이어서 고민을 털어놓기 좋은 상대였지만 가족임에도 왕래가 잦지 않아 어색한 거리감이 느껴져 입이 쉬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외갓집에서 저녁식사 한 날,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사촌오빠와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던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멀리 살지만 유일하게 편하게 여겨지는 사이라 내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오빠와 나는 다섯 살 차이인데 춤추는 것을 진로로 이미 정해 그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군대 때문에 약간의 정체기가 왔지만 여전히 춤이 자신의 일 순위라고 하였다. 나의 관심사를 털어놓으니 오빠는 “그것이 너의 일 순위라면 바뀌는 것은 나중 일이니 그것에만 매진해.”라고 조언해 주었다. 자신 역시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어릴 때 경험을 쌓는 것은 중요하며 우여곡절을 겪어야 실패를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힘든 상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뭐든 해 보라고 하였다.

나 역시 옛날에 오빠가 춤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을 때 의아했던 기억이 났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이 춤을 춘다니 모두들 너무 놀랐다. 고 1학년 2학기 때 춤을 시작했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했단다. 그리고 춤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은 확고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빠가 조곤조곤 하는 이야기들 모두가 와 닿았고 아직은 어려 보였던 22살인 사람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꿈을 위해 무엇이든 해 봐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과연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열정적이고, 절박했던 순간이 없었단 생각에 이런 나태한 고민에 빠져 있었단 후회마저 들었다.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저마다 인생의 나이가 있고 그건 개인차가 있으니깐 지금 너의 일 순위를 위해 열심히 해’라는 오빠의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한 시간도 미처 안 되는 동안 들은 말들은 현재 내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았기에 집으로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결연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은연중에 진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바꾸는 데 대한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는 것도 새삼 자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악스럽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졌다. 비록 후회와 두려움에 시간을 거치더라고 실패 따위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야겠다.

17살, 한참 고민이 많은 사촌동생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고 진지하게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쏟아준 오빠가 정말 고마웠다. 이번 기회로 내가 가진 분야의 흥미에 확신이 생겼을 뿐 아니라,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아낌없이 충고해 준 오빠가 참 멋진 사람임을 알게 되어 기뻤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 날 오빠가 해준 여러 이야기들은 살아가면서 잊을 수 없을 것이며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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