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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17)무모한 도전 그리고 소중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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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30  11: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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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여름이 저만치 물러간다. 나는 무더운 석 달 동안 노쇠에 맞서는 무모한 도전을 해보았다. 뒷산을 이틀에 한 번, 두 시간씩 노년의 나에게는 극기 훈련에 가까운 산행을 해본 것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한낮 시간을 골라 산에 오르고 평지는 속보와 다양한 몸짓을 하며 땀을 쏟아 보았다.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하루 7시간씩 오르는 나흘간의 산행으로 불편 했던 무릎과 허리통증을 역으로 치료한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유별난 행동은 나만이 느껴지는 짜릿한 즐거움과 깨달음이 뒤따른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용이라 할까 몰라도 의사의 무리 하지 말라는 충고보다 늙은이의 객기와 신념이 더 소중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 한번 실험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득실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색다른 경험 속에서 무더위의 불편함과 흘러내리던 땀까지도 소중한 추억으로 받아들이는 즐거운 여름을 경험하였다.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여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며 꾸준한 운동을 예찬 한다. 반면 미국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건강의 배신』 이라는 책에서 “몸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투쟁의 영역이 아니라 학살에 가깝다.”며 노년의 한계를 냉혹하게 정의한다.


두 상반된 주장에서 하루키의 주장을 택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한 글쟁이 때문이다. 때로 지혜로운 분들의 글속에서 그분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며 나는 동행을 꿈꾸어 볼 때가 있다. 『한겨레신문』 대기자 김지석은 왼쪽다리와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하며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하루 만보를 걸으며 불편함과 조심 속에서 작은 다름의 발견으로 새로움을 인식한다고 말한다. 좋은 글은 역시 남과 다른 삶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서다. 생수 한 병과 늙은 몸 둥이 만 있으면 가능한 실험이 아닌가.


비 오는 날도 산에 오르며 나는 나의 결연한 의지를 다짐했다. 등산을 즐기며 살아온 이래 처음으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영광을 품어보았다. 나 외에 등산객은 단 한명도 없을 때가 비 오는 날로 두 번 있었다. 자욱한 안개가 인간사는 공간과 하늘사이에 커튼을 치며 세상사 잊고 하늘만을 보며 생각의 기회를 가져 보라한다. 단순한 기도의 반복이 주는 축복처럼 오늘따라 산행은 무심코 지나치는 솔방울하나, 돌맹이 하나, 이름 모르는 풀꽃은 물론 비 오는 날이면 으레 길가에 나와 두 눈을 껌벅거리는 두꺼비 까지도 살갑게 다가오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해 준다.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4년간 다니던 시절, 출석 수업에서 만난 젊은 학생들이 정중히 인사를 하며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활력을 받고 스스로를 추스른다”는 말을 이따금 들은 기억이 난다. 산에서 만난 젊은이들 역시 힘차게 걷는 나의 모습을 보고 “참 보기 좋습니다. 건강하십시오”하며 덕담을 건넨다.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을 보며 활력을 받는 사람은 실은 나인데도 말이다. 좋은 모습들은 서로에게 즐거움과 살아가는 힘을 주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걸으며 트로트노래를 듣는 사람, 산에서도 변함없이 이어폰을 두 귀에 꽂은 젊은이, 동행인들과 산이 떠나갈 듯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반갑습니다”라며 건네는 인사도 무시한 채 그저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 사람, 모처럼 꼬맹이들을 거느리고 산행하는 행복에 겨워 보이는 중년부부, 눈 외에는 온 얼굴을 가려 따뜻한 눈길과 표정을 아쉽게 감추는 사람 등, 모두 다 나름대로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다.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움직임에 비해 먹는 것이 부실해 허기가 일상이던 시절, 철철 흐르는 물외에 이 소박한자연과 이웃들의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조금이나마 시장함을 채워줄 수도 있었을까.


이 더운 날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르는 이들이 소중히 얻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엉덩이와 허벅지사이 근육이 전해주는 황홀한 쾌감을 느끼며, 소크라테스가 지은 가사에 곡을 붙어 콧노래를 불러본다.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네” 여름 석 달간 산행에서 나의 건강 또한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꾸준한 실천과 아름다운 생각, 일상 속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더불어 살아감이 건강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주책없이 앞으로 여생의 바람을 또 한 번 수정해본다. 하늘이 허락 할 때 까지, 서산을 오르는 가장 나이 많은 노인네로 만족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축복해주면서 그저 웃고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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