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 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 하느니라.” 푸쉬킨의 ‘삶'이라는 시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전엔 웬만한 집에 가면 꼭 이 액자가 벽에 걸려 있을 만큼 흔하게 볼 수 있었으니까요.

독재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그리고 민주화를 쟁취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사를 잊고 사는 것이 어떤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가혹하리만치 절망과 낙심이 되는 때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5년 과거로 회기하는 세상에서 그 흐름을 거스르며 연어처럼 살아 왔지만 또 다시 더 거대한 계곡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절망적인것은 역사 인식이 너무도 극명하게 다른 사람들이 절반씩이라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데 하는 절망 앞에서 치를 떨어야 하니 더더욱 그 마음이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모르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고, 그 어려운 시절을 겼었으면서도 왜곡된 역사관에 세뇌되고, 정권에 이용된 용공사상에 트라우마가 강하게 박힌 어른들이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 노령사회가 되어가는 바람에 사회의 구조가 비생산자층이 생산자 층의 삶을 결정하는 이상한 구조가 된 것도 염려가 됩니다. 콘트리트처럼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변하지 않는 동쪽사람들도 안타가워 보이고..

그런다고 당해도 싸다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일이고, 잘못되어도 우리가 힘들고, 우리네 삶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잘 되라고 하고 싶지만 설령 그리 된다 하더라고 그것은 사상누각 같은 전철을 밟는 일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도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래전 민주화를 위해서 싸웠던 선배들이 이보다 더 혹독한 시대에 느꼈을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를 조금이나마 절감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목놓아 외쳐도 들어주는 이 없는 외로운 싸움을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쳐 탄압과 억압과 감시 가운데서 가족도 심지어 목숨도 내어 놓고 싸웠을 그분들이 시시때때로 절망적 상황에서 느꼈을 그 마음은 지금 우리들이 민주화의 단맛을 보다가 잃어버린 그 맘에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의 마음이 많이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의 독립과 정의와 진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싸운 선배들이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간 그 소망은 그 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어떤 싸움을 싸워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망의 봄날을 바라보면서 이 혹독한 겨울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다시 힘을 보아 분연히 달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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