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가 키워 활용하는 청년 퍼실리테이터 군단

기업 의사결정 및 정책제안 토론회 등 곳곳서 맹활약
지역 인재 육성+일자리 창출…청년 정책의 성공 사례

그간 지역 내에서 열렸던 토론회는 거의 발제자가 주제를 발표하고, 전문가 집단이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후 시간을 마무리해야 할 무렵 시민 몇 명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 자기 할 말만 하는 수직적인 방식의 토론문화였다.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분들(빅마우스)이 발언권을 매번 갖다시피 하니 매번 나오는 얘기는 비슷했고, 시간문제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도 힘들었다. 시민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2시간여의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동원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싫은 ‘형식적인’ 토론회가 다수였다.

하지만 지난 8월23일 락희호텔 연회장에서 개최된 민선 7기 시정 ‘비전과 정책’ 시민 원탁토론회는 달랐다. 150여명이 참여했지만 그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모든 사람이 적어도 5개 이상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500여개 이상의 의견이 모였다. 3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속에서 지역 내 전반적인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주제도 방대하고 참여자 폭도 다양했는데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토론회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한 첫 대규모 토론회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


퍼실리테이션, 발음도 힘든 이 낯선 단어는 최근 3개월 새 광양시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토론회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면서 지역 여론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를 신념으로 하는 퍼실리테이션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평적이고 자율적,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토론 문화가 강조되면서 최근 전국의 지자체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개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사소통의 도구와 기법을 활용해 절차를 설계한 후 토론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립적인 태도로 참여자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개진되고 전달 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퍼실리테이션’이라고 하며 이를 주관하는 사람들을 ‘퍼실리테이터’라고 일컫는다.

◇광양시가 배출한 청년 ‘퍼실리테이터’ 16인

‘퍼실리테이션’ 기법이 우리 지역에 소개되고 정착하게 된 것은 시 전략정책담당관실이 주관한 ‘청년 퍼실리테이터 양성 교육’의 힘이 컸다.
최근 신종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퍼실리테이터’ 양성교육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전문 교육기관을 찾아 150~200만원 이상의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광양시행동하는양심청년협의회 김은광 대표는 청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고민하던 광양시 전략정책담당관실에 대도시에서 유행하는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소개했고, 양성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임채기 전략정책담당관은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고, 예산을 세워 지역 청년 16명에게 지난 6월 10일~12일 2박3일간 매일 8시간씩의 양성 교육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 광양시에서 키우고 활용하는 청년 퍼실리테이터들. 윗줄 왼쪽부터 변보경, 조계진, 강은주, 김한나씨. 아랫줄 왼쪽부터 이민재, 황예닮씨.

이들은 3일간 회의 계획 설계하기, 참여자 마음 열기, 주제나 상황에 따른 효과적인 도구 사용과 소통 기법 활용하기, 결론 도출법, 갈등해결법 등 전문적인 의사소통 기법을 익혔다.
이렇게 기본기를 익힌 16인에게는 퍼실리테이션 협회의 전문 교육을 수강한 자로 인정받는 ‘수료증’이 주어졌다.
퍼실리테이터 양성 과정을 이수한 이민재(27)씨는 “취업준비생으로 진로를 탐색하던 중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고 별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양질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나니 퍼실리테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며 “교육 수료 후 실습을 거쳐 전문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데 시에서 토론회를 열면서 우리에게 실습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돈도 벌 수 있게 해줘서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민재 씨의 말처럼, 광양시는 지역 인재를 교육한 것에서 더 나가 두 달 후 실제 토론회에 이들을 투입함으로써 전문적인 퍼실리테이터로 데뷔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해줬다.

◇의미 있는 첫 시도 이어지는 ‘러브콜’

민선 7기 시정 ‘비전과 정책’ 시민 원탁토론회는 광양시민에게도, 청년 퍼실리테이터들에게도 ‘처음’ 시도라는 측에서 굉장한 의미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보니 설계와 주 토론자는 퍼실리테이터로써 전남 동부권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전문 업체 관계자들이 맡았다. 이들의 주도 아래 교육과정을 수료한 이민재, 변보경, 강은주, 김한나 씨 등 광양시 청년 퍼실리테이터들은 각 한 테이블을 맡아 토론회 진행을 도왔다.


강은주(40)씨는 “첫 무대라 너무 긴장해 3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마치고 웃으며 돌아가시는 참석자들을 보며 만족스럽고 뿌듯했다”며 “교육으로만 끝났으면 아쉬웠을 텐데 실제 현장에 투입돼 일을 해보니 더욱 발전된 모습을 갖춰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밝혔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정현복 시장은 “많은 시민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한다기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이 모두가 즐겁고 적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의견들이 많이 나와 정말 보람찼다”며 “앞으로 시민과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한 토론 자리를 많이 마련할 것”이라고 흡족해했다.
정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머지않아 실현됐다.
지난 9월24일 열린 ‘가족형 어린이 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시민 원탁 토론회에서도 ‘퍼실리테이터’들이 회의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날은 민선 7기 시정 시민 원탁토론회를 통해 첫 데뷔를 순조롭게 마친 4인방과 함께 교육과정을 수료한 박미진, 조계진, 황예닮, 강선우 씨 등도 퍼실리테이터로서 데뷔전을 치렀다.
광양시가 양성한 청년 퍼실리테이터들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 지역 기업과 단체 등에서도 이들을 회의 진행자로 모시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오후 순천 마리나호텔에서 열린 포스코 협력사 임직원 160명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비롯, 지난 11일 오후 부르나호텔에서 열린 ‘보육의 미래를 위한 광양시민 원탁토론회’의 진행도 맡았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광양을 오가며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황예닮(22)씨는 “퍼실리테이션 토론 문화가 지역을 대표하는 여론 문화로 자리매김해 시민들이 이용하고 누릴 수 있는 정책들에 시민들의 의견이 즉각적으로 더욱 많이 반영된다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데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적인 토론의 장이 자주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채기 광양시 전략정책기획관은 “광양시는 청년 인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취업난 등으로 힘든 청년들이 자주적이고 능동적으로 역량을 강화해 지역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 거듭나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중심축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청년 역량 강화 교육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며 “시에서 발굴한 일꾼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에 절로 웃음이 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이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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