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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문화 관광산업화 과정 주민소통 부재 논란주민들 “주민이 인적 자원인데 계획에서 배제”
최인철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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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3  21: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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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충분히 의견수렴…역사상상 플랫폼 조성”

광양시가 광양읍 사곡리 일대 방치된 폐금광 시설을 관광 자원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금광마을로 지정된 점동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민 불만이 상당한 실정이다.

광양시는 지난달 22일 점동마을 금광 관광명소화사업 3단계 사업 협상을 마무리하고 광양의 금광역사를 스마트관광으로 구현하기 위한 과업에 본격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마지막 3단계 사업으로 △스토리텔링 콘텐츠 발굴 △스마트 앱 콘텐츠 개발 △황금테마 시설물 설치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금 채굴 역사를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감동할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각색하거나 개발해 관광마케팅 등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동굴 입구에 황금 동굴문을 설치하고 금광의 가치를 더해줄 미디어 파사드, AR 콘텐츠 등을 구축해 광양의 금광역사를 다차원 실감형 스마트관광으로 구현하는 한편 증가하는 젊은 관광세대를 목표로 스마트폰으로 사금 채취부터 세공까지 모든 과정을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체험형 증강현실(AR) 콘텐츠를 만들고 게임 결과나 포토존 모든 이미지 등을 주변 친구들과 SNS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광양시의 이 같은 계획에 해당사업 핵심마을인 점동마을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 지 오래다. 무엇보다 행정주도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금광에서 일했던 경험 등 점동마을 주민 대부분이 우리 지역 금광산업의 소중한 인적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우 점동마을 이장은 “이번 사업은 지난 2017년에 시작됐으나 시작 당시부터 주민들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진행되면서 금광마을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역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우려가 컸었다”며 “사업이 마무리돼 가는 현시점에서 보면 이 같은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앞 저수지는 세금과정에 사용하기 위한 물을 담던 곳이어서 수변데크 조성과는 거리가 먼데도 막무가내로 공사를 진행해 금광이라는 스토리와 전혀 맞지 않은 친수공간으로 변질됐고 곳곳에 조성된 조형물 역시 금광마을로 선정한 점동마을의 스토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박 이장은 “점동마을이 지닌 금광의 역사를 관광 자원화하겠다는 게 광양시의 입장이지만 실제 금광과 함께 살았던, 그리고 현재에도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배제된 채 보여주기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광양금광산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며 “누구보다 마을주민들이 광양금광의 산증인이자 인적 자산임에도 소외되고 있다”고 거듭 아쉬움을 표명했다.

그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얽인 사업들을 진행할 때는 지역공동체와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광양시의 소통부재를 거듭 꼬집었다.

이에 광양시 관계자는 “사업 시작 전부터 주민들과 수시로 만나 설명했고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 물론 의견이 일부 수용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이를 소통 부재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광양경제를 좌우하기도 했던 금광이라는 독특한 역사자원에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해 기억에 남을 만한 체험공간을 구축하고자 진행되는 사업”이라며 “일부 반발이 있을 수 있으나 디지털기기에 익숙하고 SNS를 적극 활용하는 젊은 세대의 오감을 충족시키고 광양읍과 중마동을 연결하는 역사상상 플랫폼을 조성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광양광산 역사는 조선말 왜정시대에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이 강압적으로 우리나라의 광산채굴권을 획득하게 되자 조정에서 1895년 사금개발 조례를 발표해 민간인에게도 광산개발이 허가되면서 시작됐다. 1906년 경남 함안 출신 김순서와 김순녀 씨가 초남리와 사곡리 일대에서 광맥을 발견해 광석을 채굴한 것이 광양광산의 시초였다.

1915년 12월 박재근 외 4인이 광업권 설정 등록을 얻어 원시적 방법으로 채광했으나 1916년에 이르러 채광실적이 높아지자 각지에서 모여든 광부가 2천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사곡리 점동마을에서 익신리 강정마을을 흘러가는 사곡천변에는 수차 도광제련장이 10여 개소에 이르렀고 채광지가 익신과 현월마을 앞바다까지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일제의 경제침략이 이곳에 미친 것은 1917년이다. 일본은 서양식 채광 기술과 장비로 막대한 금을 채굴했다. 해방 이후에는 폐광상태였다가 본정마을 촐신 하태호 씨가 1958년 주주들을 끌어모아 광양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정부의 광산진흥정책에 힘입어 광업권을 취득하면서 현 초남공단 부지 일원과 본정광산사택 부지 등을 불하받아 광산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광양금은 순도와 질이 양호해 호평을 받았고 본정광산 봉급날엔 광양장의 쌀값이 10% 정도 오르는 등 광양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70년대 금 시세가 하락하고 갱내 심도가 광양만 해수면 이하로 강하하면서 지압 위험과 깊어진 지하갱도로 광부들의 안전사고가 빈번해져 1975년에 본정광산을 폐광했다. 1979년 장석두 씨가 복구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광양시는 점동마을 금광부지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살린 콘텐츠로 시민이 여가를 즐기고 관광객이 찾는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지난 2017년부터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1단계 사업으로 마을카페, 호수둘레길, 주차장 시설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2단계 사업으로 금광체험시설 및 호수공원 조성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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