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작가 김훈은 『연필로 쓰기』에서 “연필은 나의 삽이다.”라고 말한다. 미흡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해석해 본다. 김훈의 연필은 소출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땅을 파야하는 농기구. 나태를 일깨워주고 피로한 몸을 지탱해주는 회초리이자 때로는 지팡이. 호구지책을 위해 옆구리에 찬 숟가락.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방향타이자 추동력이 아닐까. 이제 행복 찾기라는 주제로 열아홉 번째 글을 연필이 아닌 자판으로 여행해 본다. 책도 뒤져보고, 시 도서관들이 주관하는 초청명사들의 행복과 성취, 자존을 주제로 하는 강의를 들어보며 느낀 깨달음 하나를 이번에는 소개할까 한다.

의사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기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눈빛, 표정, 제스처 등 전체적인 말하는 이의 행동이 전하는 이미지가 훨씬 크다는 이야기다. 명사들의 열강을 들으며 내가 가진 의문 하나는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박하고 논리적인 이야기와 달리 그분들에게서 느끼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행복으로 충만 된 모습과는 거리가 느껴졌다. 행복을 실천하는 생활이 가져오는 감격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하게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나의 경우는 명사들에 비해 식견이나 경험도 부족하고 짧은 기간 행복을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후로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걷고, 누군가와 만나면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싶고, 집사람으로 부터 주책없다 핀잔을 들으면서도 나의 이 기분을 누군가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 안달인데 말이다. 외람되게도 그분들의 행복은 인스턴트이고 나는 로컬푸드 행복이라고 자위해 오던 차에 『에밀 뒤르케임; 사회 실재론』이라는 책에서 소중한 열쇠 말 하나를 발견했다. “근대의 가장 큰 성취는 개인을 발견한 것이다.”라는 글이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국가와 사회,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한 인간도 소중하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실존적 한 개인의 존재를 서로 눈여겨보고 스스로도 의미를 찾자는 뜻이다. 이 주장을 유추하면 행복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며, 스스로가 얼마나 진솔하고 당당하게 한 주체로서, 행복을 생각하고 행동하며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것은 남이 평가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느끼는 실존의 문제이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행복을 외처도 부와 권한과 명예가 요동치는 서울에서 곁눈질하지 않고 마음의 동요 없이 한결같은 마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푸른 숲 오솔길을 걷는 사람과 번잡한 매연의 도시 길을 걷는 사람의 얼굴에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는 같을 수가 없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나 평가는 주관적 인식과 지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얼마나 마음을 비울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명사들보다 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란 시인 루미의 시처럼 “우뚝 서려 하지 말게 나/ 평평해 지게나/ 부서지게 나/ 그러면 그대로부터 들꽃들이 피어날 테니”라는 말을 좋아하며 살아도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북 장수에 사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은 “논밭 일구고 농사도 지어보고, 자식농사도 짓지만 ‘마음농사’가 최고”라며 자연 속에서 날마다 살아있음을 느끼니 99%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퇴직 후 농사를 지으며, 선택과 집중을 하라며 한 작목을 권장하는 친구들의 우정 어린 충고에도 50여 작물을 삽과 괭이 등 재래식 농기구로만 12년을 750평의 땅을 일구며 살아 보았다. 대상포진과 관절치료로 병원을 자주 드나든 적도 있다. 경로우대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칠순기념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도 다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러운 것은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남들이 안한 행동을 하면 반드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작물은 자라가는 모습과 수확의 즐거움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내 오감을 일깨워 주었다. 그들과 손을 잡고 나는 산들바람에 리듬을 타며 일이 아닌 춤을 추고 있었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 나는 무릎 관절과 허리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호언장담을 해왔고 자식들 앞의 약속이라 무리한 출발을 했는데, 험준한 산길을 다녀 온 후 지금까지 거짓말처럼 불편함이 없어져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독서와 글쓰기 역시 고달플 때도 많지만 나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챙겨주고 세월의 흘러감을 잊게 해 준다. 지리산 종주와 농사를 경험하며 ‘열심히 산 하루가 단잠을 가져오듯 일생을 열심히 살면 기쁜 죽음을 맞을 것이다’라고 생각 했는데 오백 년도 더 전에 레오나르도다빈치가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값지게 쓴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는 글을 최근 읽었다. 인간의 깨달음은 특별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진솔하게 다가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들며 잦은 잊음 등 감각기능의 약화를 실감하면서도 오직 나만을 직시하며 가장 소중한 것에 생각을 두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웃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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