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더 겨울을 향해 몸을 누이는 시간, 중마초등학교(교장 이상인)는 아직 가을에 들어있다. 물론 끝자락이다. 환하고 고운 아이들의 웃음은 여전히 푸르지만 가을 속에 든 교정은 붉게 물들어 따스한 가을볕을 쬐고 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더 중마초를 향해 천천히 들어가 보면 지금 그곳은 천지사방 풋풋한 시밭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학교 안 나무와 벽, 사방 곳곳에 시가 열매를 맺고 있는 까닭이다.

중마초 운동장 일원이 모두 그러한데 이 시밭의 주인공은 모두 아이들과 교사들이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지난봄부터 행복하고 즐겁게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소중히 가꿔 마음 담기 좋은 가을 끝자락에 시밭을 공개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직접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펼쳐놓은 시화전이 바로 그것이다. 나무와 벽마다 이를 붙여 문을 연 매우 특별한 시화전이다.
전교생과 교사가 쓴 동시와 그림 등 모두 1142점이 나무에 단풍처럼 매달렸다. 바람이 부는 날엔 만장처럼 펄럭인다. 이처럼 큰 규모의 시화전을 본 적이 없으나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역시 본 적이 있을까 싶다. 아이들의 소중한 마음과 꿈들이 빼곡한 시화전 아닌가.

“시가 좋아졌어요. 우리 교장선생님이 동시를 가르치시는데 굉장히 유명한 시인이세요. 그런 선생님을 따라 그동안 쓴 시가 한 30편 될걸요”
중마초 운동장에서 만난 한 아이가 내놓은 말이다. 장난기가 섞였지만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이 가슴에 콕 박힌다.


아이의 말은 맞다. 이상인 중마초 교장은 시인이다. 1992년 한국문단을 통해 문단에 처음 얼굴을 알렸고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자했다. 지난 2016년 세종도서 문화나눔에 서정했고 제5회 송순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양을 대표하는 시전문 동아리 ‘시울림’ 멤버이면서 현재 순천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맡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지역 대표 시인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난 이상인 교장은 대뜸 “시 쓰기 좋은 계절, 아니냐”고 묻는다.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다. 그는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는 교단에선 물러났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동시를 통해 만나고 있다.


이 교장은 올 3월 중마초에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그가 학교에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중마예술감성교육이라고 이름 붙인 동시교실이다. 3월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동시교실 운영에 들어가 현재까지 21학급 42시간을 아이들과 동시를 쓰며 보냈다.


이 교장은 “처음엔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희망자가 넘쳐날 정도다. 간밤에 시를 써서는 지도해 달라고 아침부터 교장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도 많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동시 쓰기는 아이들의 창의력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사고하는 법과 함께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감성과 인성교육”이라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진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동시교실에 학부모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지난 달 열린 학예회에선 아이들의 작품을 찾아 학부모들이 운동장에 몰리면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이 교장은 “앞으로는 아이들과 교사는 물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동시교실 운영도 생각 중이다”며 “내년 가을엔 가족시화전을 꼭 개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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