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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11: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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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인(仁)이란 한자의 구조와 본래의 뜻을 설명하는 『설문(說文)』에 따르면 인(人)과 이(二) 두 글자가 합해서 된 것이며 ‘친(親)하다’는 뜻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이 공자 사상의 핵심개념이 되면서 ‘어진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다 ‘선의 근원이 되고 행의 기본이 되는 것,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 그리고, 효, 충, 예, 신(信), 애인(愛人)등 일체의 덕목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인의 시작이라 했고, 주희 역시 마음의 덕이며 사랑의 이(理) 라 요약 한 바 있다. 나는 여기서 한 수녀님의 진솔한 말씀을 회상하며 평범한 우리들의 삶속에서 인의 의미를 찾아볼까 한다.


성경공부로 인연을 맺은 뒤 내가 무척 존경한 수녀님과의 일화이다. 어느 날 성당의 큰 행사 준비과정에서 수녀님이 나이 많은 자매님들에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이 나에게 목격 되었다. 나는 예상외의 수녀님 행동을 보며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의 지켜보는 모습을 확인한 수녀님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며칠 후 수녀님과 나는 이심전심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보(나의 성당 본명)씨 놀라셨죠? ”우리는 정갈한 수녀 복을 입고 바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늘 하지만 소갈머리는 뱃속에 열 달 아기를 담고 인내하고 자식 키우는 자매들 보다 못하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수녀님께서 지난해여름 휴가차 오빠 집에 갔는데 친정집에 와 출산 후 아이를 키우는 조카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한다. 처녀 때 그렇게 깔끔 방정을 떨던 조카가 똥이 범벅이 된 기저귀를 망설임 없이 갈아내고, 등에 땀띠가 솟아 보채는 아이를 앉고 거실과 마당을 오고가며 여름밤을 거의 지 새는 모습을 보고 한 아이를 키워내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가를 보며 반성하셨다한다. 수녀님의 진심어린 말씀에 나는 더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고 성당생활을 쉬면서도 수녀님과는 대화의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인(仁)’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보았다. 인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배를 맞대고 아이를 낳고 힘을 합쳐 기르는 것이라고. 특히 어머니가 인내해야하는 열 달의 불편함과 생사를 오가는 산고의 고통, 한 생명을 길러내는 사랑은 어떠한 기도나 참선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 어떠한 덕목이 이보다 더 희생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겠는가. “너도 한번 아이를 낳아 봐야 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는 가슴 아림과 희열이 교차하는 그 깊이를 경험만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운명처럼 살아온 삶속에서 스스로의 위대함을 순명처럼 가슴에 묻고만 살아왔다. 단지 앎을 앞세우는 사람들처럼 해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지 못하였을 뿐 수면아래 빙산처럼 지도자를 떠받들며 언제나 역사 속에서 그러하듯 우리들은 묵묵히 주어진 소임을 다해왔다. 지식을 앞세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인’이 주장해온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물론 “아픔을 느끼는 통각”마저 잊고 공존의 소중함을 잊어가는 현실 속에서 어떤 바람도 앞세우지 않고 아이를 낳아 정성껏 기르는 초심으로 돌아가 잊혀진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일깨워내야 하지 않을까? 태어남과 죽음은 어쩌면 우리영역 밖의 문제일 수 도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그 심오한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에 죽은 새끼 옆을 떠나지 못하는 원숭이 모습이 나오고, 산불이 번져도 끝가지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 시키고 마는 한 어미 새 모습은 출산을 기피하는 오늘의 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삼십대의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칠·팔십대가 되어 반려동물을 안고 공원을 거닐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잘한 결정이라고 자위할 수 있을까. 우리조상들은 효의 으뜸을 자식들의 어떠한 자랑거리보다 그저 죽기 전에 자식이 주검을 보여주지 않는 것에 두었다. 부모와 자식 간은 서로 보고 보여줌 보다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죽음 또한 그렇다. 이·삼십대와, 사·오십대와, 칠·팔십대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다르다. 세월이 흐르며 삶이 주는 즐거움은 점차 줄어들고 반대로 생존을 위한 불편함은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증가한다. 마지막 자존을 지키며 명예로운 퇴진이 그리워진다는 뜻이다. 누가 인정해주고 알아주지 않아도 태어남과 죽음사이 주어진 삶을 내 몫만큼 성실이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인(仁)이 삼라만상과 존재의 근원이며 가장 큰 사랑임을 다시 한 번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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