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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켜내는 운동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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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11: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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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시전통연희단 총감독 양향진

에비야~~~. 이비(耳鼻)야~~~,. 코 베어간다!
내 어렸을 적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에비야~’라고 소리치시면 아이들은 무서워서 숨거나 도망을 쳤었다.


조선군과 조선민중들의 코 무덤은 일본의 도요쿠니 신사 건너편으로 100여 미터 떨어져 방치되어 있다. 필자는 2019년 9월 며칠 간의 일정으로 그곳에서 열린 제5회 왜덕산 사람들의 코 무덤 평화제엘 다녀왔다.
진도의 왜덕산 사람들, 일본의 추모인들, 종교계, 내가 총무이사로 있는 남도민속학회, 문화예술계, 광양시 전통연희단, 그리고 여러 민간인이 모여 교토 이비총에서 평화제를 열었다. 순전히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이루고 있는 평화제이다.


진도의 왜덕산은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전사한 왜군들의 시신을 수습해 일본이 가장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아 묻어준 야산이다.
왜덕산 사람들과는 다르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염장을 해 일본으로 가지고 가서는 그 수를 헤아리고 코 무덤을 만들어 그의 공적을 과시했다.


코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文祿) 게이초(慶長)의 역(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일본식 명칭 1592~1598)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 무장들은 예부터 전공(戰功)의 표지이던 적군의 목 대신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리품은 히데요시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돼 공양 의식이 거행됐다고 한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는 조·명 연합군의 반격으로 전황이 교착에 빠지자 전투를 독려하고자 전리품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오라고 명령한다. 코 무덤과 관련해서는 역사 속 증언이 많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강항은 ‘간양록’에서 “히데요시가 모든 장수에게 명하기를 사람의 귀는 둘이지만 코는 하나이니 마땅히 조선 사람의 코를 베어 머리를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한 사람이 한 되씩으로 하되 소금에 절여 나에게 보내라. 코의 수효가 채워진 이후에야 생포로 인정하겠다”고 기술했다. 사람의 목보다는 코가 부피로나 무게로 훨씬 효과적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군 종군 승려 경념(慶念)의 기록은 당시의 참혹함을 이렇게 전한다.
“역사상 이 전쟁처럼 슬픈 것은 없다. 일본 병사들이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았고 불을 지르니 그 연기가 고을마다 가득했다. 조선 사람은 어린이부터 부녀자까지 코를 잘라 대바구니에 담았고 병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2012 성기중 논문, ‘일본에 축조된 비총의 의도와 대응책 연구’ 중에서 재인용)


코 무덤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이의 코가 묻힌 것일까. ‘교토의 귀 무덤에 대한 일고찰’(노성환·2009) 중 일부를 인용한다.
“일본 측 기록인 ‘조선물어(朝鮮物語)’에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 사람 코 18만5738개, 명군 코 2만9014개 등 모두 21만4752개의 코가 일본으로 보내졌다. ‘대일본고문서’(1925)에 나온 요시가와 집안만 하더라도 1597년 9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 40일도 안 되는 기간에 3만1000여 명의 코를 베었다고 한다. 역사학자 이진희는 ‘한국과 일본문화’(1982)에서 ‘교토 코 무덤에 묻혀있는 조선인들 코 숫자를 약 5만 개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재정은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2007)에서 ‘적어도 10만여 명의 조선인의 귀와 코가 잘려나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호리 교안이 쓴 ‘조선정벌기’에는 ‘(왜군들은) 조선에서 자른 코와 귀를 수레에 싣고 오사카 후시미 라큐추(교토)를 지나 여러 사람에게 보였다’고 했다.


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1615)에서 ‘이때 우리나라 사람 중에 코 없이 살던 사람이 많았다’고 전한다.”(교토의 허문명 기자가 코 무덤 평화제에 동행해 신동아 2019년 11월호에 올린 내용 일부를 인용함)


아마도 당시 이곳 광양사람들의 코도 많이 잘려져 그곳에 묻혔으리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다.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켜내는 운동은 끊임없어야 한다.
한·일 갈등이 골이 깊어지는 지금, 왜군의 시신을 수습해 묻어주었던 왜덕산 사람들의 그 정신을 본보기 삼아 한·일 관계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


동행케 해 주신 분들께 고마움 올립니다.
먼 길 마다치 않고 같이 해 주신 분들께 고마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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