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모처럼 중앙도서관에 나왔는데 늦가을 햇살이 몹시 따사로웠다.

사방을 둘러보니 뒷산의 단풍이 아직 물든 채 남아 있었다. 군데 군데 잎을 떨군 나무도 있었지만 힘차게 청춘을 보낸 나무는 한 해 동안 살아온 아름다운 기억을 색색의 단풍으로 표현해주는 듯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유혹이었을까 내 발길은 단풍이 흔들리는 언덕길을 향하고 있었다. 가을은 나를 그대로 두지 않았고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 중에는 소나무, 떡갈나무, 참나무,도토리나무, 동백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우산공원이었다.
그들 나무 중에 유독 도토리나무에 눈길이 갔다. 소설가 이균영 때문이었다. 그의 소설 ‘어두운 거리의 침묵’에는 도토리나무에 얽힌 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고향마을의 뒷산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산언덕에 올라 아득히 바라보던 희미한 남해와 우리가 동경하던 북쪽 하늘, 가을이면 뒷산에 해묵은 도토리나무 숲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는 게 우리의 일과였다. 재미로 하는 일이었지만 명절 때면 도토리묵을 쑤어 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떼를 지어 도토리나무 숲으로 가곤 하였다. 익어 저절로 떨어진 것을 줍고 나면 돌을 던져 도토리를 따내려야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는 우리가 돌을 던지기엔 너무나 높았다. 제일 아래 처진 가지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럴 때 우리에겐 남명이가 필요했다. 남명이가 돌을 던지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도토리가 떨어졌으니까
............(중략)
남명이는 돌을 던질 뿐 도토리를 줍지 않았다. 그래도 늘 우리보다 많은 도토리를 제 몫으로 차지했다. 우리는 주운 도토리에서 얼만가를 남명이에게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내 옆으로 늘어선 도토리나무는 하늘 멀리까지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도토리를 줍던 아이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무들도 나이를 먹었고 몸집이 커져있었다.
남명이가 누구였을까?
그 때 함께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도토리를 줍던 아이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겉으로 보면 도토리나무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지나온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숨쉬고 있었다. 어찌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문명에 갇혀 사는 우리를 위로해주고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언제 어디서나 고향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 까닭 없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게 아닌가 !

우산공원에는 이균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은 문명의 재료들로 좀 과하게 덧칠된 듯했지만 비교적 잘 정돈되어있었다. 공원길 옆으로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젊은 이들이 모여 만든 이균영 숲속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만든 꽃길도 들어왔다.
도서관 마루에는 햇빛에 표지가 바랜 책 몇 권이 누워있었고 바람막이가 없는 정자형 도서관은 잎을 떨군 나무들의 흔들림처럼 을씨년스럽고 처량해 보였다.

꽃은 시들고 잡초가 무성해져있지만 그를 아끼는 마음들이 흩어진 채 피는 풀꽃처럼 살아있음을 느꼈다.

기왕이면 산책로로 이용되는 공원이 그 기능을 확장시켜 이균영문학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거창하지 않더라도 추위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열람실과 가난한 시절을 뚫고 지나온 그의 집념이 담긴 원고 뭉치와 유품이 소장된 기념관이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

요즘 시에서는 많은 인구를 유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 양육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이들 양육하기 좋은 도시란 학교가 아니더라도 깊이 느끼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된 곳이란 생각이 든다.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문학관 기념관 등등 구태여 생활비를 보조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느끼고 배우며 즐길 것이 많은 도시가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도시가 아닐까 ?

아이들 스스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고 느끼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효과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아이들은 미래를 향해 늘 꿈을 꾸지만 꿈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실현된다.

이균영은 우리나라의 문학계와 역사계를 통해 뚜렸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이균영을 가운데에 두고 문학계와 역사계는 서로 자기네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당시의 소설계의 이상문학상이나 역사계의 단재상은 최고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만 주는 귀한 상이었다.
그 상을 동시에 받았던 유일한 사람이 이균영이었기에 그의 존재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우산공원은 이균영의 창작의 터전이었고 그가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찾아와 숨통을 트이게 했던 장소였다.
그가 자라면서 겪었던 어릴적의 추억과 아픈 기억들, 지역이 험난하게 지나온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이기도하다.

우산공원이 그런 많은 것들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그가 소설가이며 역사학자였다는 사실이 그러한 수요를 충족시키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든다.

공원길을 무심히 땀흘리며 뛰거나 걷기만 하는 것보다 한 소설가가 꿈을 키웠던 길 주변에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읽게 했으면 좋겠다.
그의 소설 속에는 가을햇살처럼 따뜻하고 가을 국화처럼 향기 나는 말들이 참으로 많다.

짧거나 길거나 그 글들을 책에서 떼내어 길바닥에 새겨도 게시판에 세워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너무 일찍 떠난 그를 살려내고 싶다.

올 해로 그가 떠난 지 23년이 지났지만 그가 언덕에서 바라보았던 동뜰과 북쪽하늘은 여전했다.
우산공원 아래에는 아직도 구순을 훌쩍 넘긴 이균영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그의 생가가 홀로 초연했다.

큰 기와집 앞마당에는 이균영이 세상을 떠난 해 어머니가 심었다는 은목서가 아들을 향한 당신의 그리운 마음인 양 훌쩍 자라 있었고 별채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형제처럼 다정했던, 어린 이균영과 정채봉이 함께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방과 마루가 세월에 그을린 채 남아있었다.

집안에 남아있는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라서 가슴이 먹먹해졌고 당장이라도 그가 방문을 열고 반갑게 다가올 것만 같았다.

고향은 늘 그의 소설의 주 무대가 되어 주었다.
그가 쓴 소설 중 ‘노자와 장자의 나라’ 또는 ‘어두운 거리의 침묵’ ‘터’ ‘불붙는 난간’ 등에도 어김없이 광양이 등장했다.

우산공원이란 시민이 산책할 수 있는 단순한 공원이지만 이균영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현장이었고 멀리 흩어져있는 생각들을 끌어 모았던 특별한 장소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글과 앞산 언덕(우산공원)은 우리들 곁에 있다.
그의 가족사를 통해 그 시대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를 통해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소설가로서 역사학자로서의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고향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파헤쳐낸 때문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고 숲이 변하고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떠나갈 지라도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했던 이야기들은 진정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소중한 지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쓰는 고향에 관한 이야기란 단순히 개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그 지역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온 생활의 기록이기도하다.

우리가 보존해야 할 것은 창작의 온상이 되었던 장소와 그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이다.

이균영의 소설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우산공원이 좀 더 풍성해지려면 그런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균영의 문학비가 우산공원에 들어선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문학비에도 그의 작품 속에서 그가 바라보며 꿈을 키워왔던 그 자리에 세웠으면 좋겠다.

이것을 시작으로 아직도 깊이 잠자고 광양의 문학을 큰 소리로 흔들어 깨우고 싶다.
이것은 차라리 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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