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신촌, 해창, 삼성, 부흥, 세승, 신두, 해두마을과 율촌산단으로 이뤄진 세풍은 근래에 마을들이 둘러쌓고 있는 넓은 농지에 세풍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마을 지형 변화와 전통이 사라지면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을주민들의 공동체의식이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마을 청년들이 나섰다.

세풍 연합청년회는 올해 전남도마을행복공동체 활동지원사업으로 역사와 전통, 문화가 있는 마을을 주민들과 함께 둘러보면서 문화자원을 보존, 발굴하는 마을기억지도 만들기 프로그램‘함께 만드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기획, 추진했다.

그 첫 시작은 지난 4월 17일 이장단과 부녀회 등 마을 어르신들과 세풍 초등학교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사업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청년회의 마을 사랑과 패기 넘치는 열정에 각 마을 어르신들도 흔쾌히 함께 해주셨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마을의 이해도를 높이고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와 학부모의 참여도 끌어냈다. 처음 하는 사업이다보니 벤치마킹이 필요했다. 전남 진도와 경남 진주 동피림을 찾아 마을지도 제작 과정을 안내받고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견학했다. 전문가를 초청해 마을 형성과정 및 문화자원을 찾는 방법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준비작업이 얼추 마무리 되자 세풍연합청년회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광양시지를 공부하며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정리했고, 각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물어 전설 및 설화, 마을 사진 등을 수집했다.

동네의 산 증인인 어르신들과 청년, 아이들이 함께 마을을 돌며 숨어있는 마을 유산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했다. 옛 사진과 비교하기 위해 현재 마을의 모습들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았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월5일 마을지도 제작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지도에 들어가야 할 곳을 선정하고, 세풍초 학생들이 그릴 마을지도의 초안을 선정했다. 지난 10월18일에는 주민들과 학생들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마을지도를 그렸다. 한창 바쁜 농번기였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재밌게 참여했다. 이렇게 작업한 그림들은 편집과 인쇄 과정을 거쳐 한 장의 마을지도로 재탄생했다.

세풍연합청년회와 마을 주민들이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세풍마을지도는 지난 11월 23~29일까지 해창마을회관에서 전시됐다. 이 전시회에서는 마을지도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사진들과 마을의 옛 사진, 드론으로 촬영한 2019년, 오늘의 마을 사진들이 전시됐다. 앞으로 마을지도와 사진들은 각 마을회관과 동네를 대표하는 요소요소에 전시될 예정이다.

정상현 세풍연합청년회장은 “세풍에서 나고 자란 나도 잘 알지 못했던 동네의 수많은 보석같은 이야기를 마을지도를 만들며 많이 알게 돼 기쁘다”며 “알루미늄 공장 설립 문제 등으로 인해 세풍의 분위기가 좀 뒤숭숭했는데 공동체 사업을 함께 하면서 많이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앞으로 주민들과 함께 율촌 산단에 있는 세풍 땅에 대한 권리 찾기 운동과 환경정화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세풍’을 대내외적으로 많이 알리고, 공동체 의식을 돈독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풍 마을지도 길을 함께 걸어요

세풍이라는 지명은 세승마을의 앞글자인 ‘세’와 신두마을의 옛 이름인 신풍의 ‘풍’자를 조합해 붙여진 이름. 해창과 봉정, 중몰, 내려골, 세승, 신두, 해두 등 자연부락을 형성해 살아오다 1957년 세풍간척지 조성사업 후 신작로를 따라 신촌, 삼성, 부흥마을이 새로이 조성됐다. 이후 해창과 봉정, 중몰 3개 마을은 합쳐져 해두, 신두, 세승, 부흥, 삼성, 해창, 신촌 등 세풍리 7개 법정 마을을 이루고 현재에 이른다.

1. 민의원 황숙현 공적비 : 세풍은 광양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이는 광양지역 출신 민의원인 황숙현 씨가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1957년 광양만간척지제방공사 사업을 진행, 약 708정의 간척지를 조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세풍은 인구와 소득 등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이 공덕비는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광양군 농지개량조합에서 세운 비다.

2. 해창마을 당산나무 : 해창마을 당산나무는 세풍지역에서 가장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팽나무다. 수령은 약 440년. 해창마을은 음력 정월 초이튿날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북놀음(해창메구)을 펼친다. 제사를 지내기 전 쥐가 제사음식을 먹으면 바로 죽는다는 전설이 스몄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마을주민들이 당산나무를 꽹과리를 치고 당산나무를 돌면서 관군에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전해온다.

3. 봉정샘 : 이곳 샘의 물이 맑고 그 맛이 탁월해 광양현감이 감탄할 정도였다고 전해온다. 옛날에는 이곳 샘이 해변가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마을의 한 중간에 위치했다. 샘이 수량이 풍하고 맑아 이를 봉황에 견줄만하다 여겨 이름을 봉정이라 했다.

4. 장영모 선생 공덕비 : 세풍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개교 당시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1965년 세풍초 건립 전 세풍지역 학생들은 거리가 먼 광양서초등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세풍초가 개교하면서 세풍지역의 교육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장영모 선생의 세풍초 개교에 헌신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풍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5. 무선쟁이(무선재) : 세승마을과 광양읍 덕례리 무선마을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장날이나 등교 등 해두과 신두, 세승마을 주민들의 광양읍으로 가야할 때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자 요충지였다. 동화작가 정채봉이 친가와 외가를 오갈 때 이 재를 넘었다고 전한다. 해방 격동기를 겪으면서 죄 없는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학살된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6. 진등 : 세승마을로 들어가는 또 다른 입구를 이루는 동산의 이름이다. 소나무가 울창한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손색이 없었다. 현재보다 소나무가 많았으나 정자 등을 세우거나 재난을 겪으면서 많이 소실됐다. 진등은 마주보고 있는 신두마을 선황비의 기운이 마을로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온다.

7. 신두마을 선황비 : 신풍쟁이라는 옛 마을 이름은 삼국지에서 차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을입구에 세워져 세승마을 마주 보고 있는 선황비 역시 이와 관련이 크다. 한나라 태조가 아버지인 태상왕을 경도로 모시면서 이곳에 이웃을 함께 이주시키고 고향 풍시의 이름을 따 신풍이라 했고 마을주민들이 이를 기려 마을 입구에 선황비를 세웠다 전해온다. 1950년대는 세승마을과 마찰로 파손됐으나 복구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8. 갱본 : 해두마을에 속한 지명이다. 순천과 경계를 소하천을 따라 십여 가구가 마을 이루고 살았으나 현재는 대부분 떠나고 두어 가구가 살고 있다. 갱본이라는 지명은 ‘강변’에서 파생된 사투리로 간척지 조성 전까지 해수가 밀려오는 바닷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두의 옛 이름인 ‘게멀똥’ 역시 게가 많이 잡히고 앞산이 게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라 하니 이 같은 추정에 신빙성이 상당하다.

9.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이 섬 전체에 산재하고 있으며 무문토기와 미완성 석기편들이 다량 조사됨. 수습된 유물로 보아 아주 옛날 주거 유적과 석기제작소가 있었던 지역으로 판단됨

10. 세풍습지 : 간척지 조성 당시 배수를 위해 조성한 인공 늪지다. 일부 해수와 민물이 섞이는 곳으로 천연의 갈대밭이 조성돼 있어 붕어 등 어류들이 번성하기 알맞은 지역이다. 겨울이면 청둥오리나 두루미 등 수많은 철새떼가 찾아와 서식하는데 철새들이 무리를 이뤄 비상하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 갈대밭 사이로 저무는 석양은 아름답다. 가히 광양의 10경에 들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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